밧모 섬의 사도 - 요한
재회(再會)
“오늘이 유대인의 안식일인 모양이군!”
낡은 두루마리 책과 걸레같이 해어진 방석을 챙겨 막사를 나서는 요한을 보고 한 죄수가 중얼거렸다. 문 앞에서 마주친 로마 초병도 제지하는 대신 가볍게 손을 들어 가도 좋다는 허락 신호를 보냈다. 죄수들은 매일 강제 노동을 해야 했지만 요한에게는 안식일마다 예외조치가 내려졌다. 그것은 86세에 이른 고령(高齡)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요한을 처형하기 위해 끓는 기름 가마솥에 던졌지만 상처하나 입지 않자 이 밧모 섬으로 유배시켰다는 것이었다. 서기 81년에 집권한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 81-96)는 살아 있는 자신을 신(神)으로 경배하도록 강요했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거절하자 격노한 황제는 기독교인인 사촌 클레멘스 총독을 살해하고, 자기 부인 도미틸라를 섬으로 유배시켰다. 지난 64년 네로 황제(Nero, 54-68)는 로마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에게만 박해를 가했지만, 도미티아누스는 훨씬 큰 범위의 박해를 가했다. 에베소에 머물러 있던 최후의 사도인 요한도 96년 경 체포되어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다. 소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나이나 인품 때문이었는지 난폭한 죄수들도 요한에게만큼은 존경을 나타냈고, 간수들도 그를 정중히 대해 주었다.
워낙 고령인데다 힘든 강제노역과 빈약한 음식으로 쇠약해진 요한은 천천히 언덕을 올라 안식일마다 찾는 기도처에 도착했다. 가쁜 숨이 잦아들자 요한은 무릎을 꿇고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두고 온 교회들을 위해 긴 기도를 드렸다. 사실 교회의 미래는 암담했다. 예수께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하늘로 가신지 65년이 흘렀다. 요한의 친구들은 하나씩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모인 세베대와 살로메도 죽었다. 형 야고보는 목베임을 당했고, 그가 봉양해 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고인이 되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었고, 바울도 참수되었다. 요한 자신을 제외하고는 열 두 제자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과연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기억하고 계시는가? 그분은 약속대로 정말 오실 것인가? 정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인가?
갑자기 뒤에서 요한의 공상을 깨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렸다.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일곱 교회에 보내라”(요한계시록 1장 11절)
황급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본 요한은 크게 놀랐다. 화산지대가 온통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일곱 금촛대 사이에 예수께서 서 계셨다. 65년 만의 재회였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멸시와 굴욕을 당하시는 슬픔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분은 영광으로 옷 입고 계셨다. 전신은 태양처럼 빛났고,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다. 다니엘이 노년에 본 모습(다니엘서 10장 5, 6절) 그대로 예수께서 요한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다니엘처럼 요한도 영광에 압도되어 쓰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다니엘과 같이 요한도 자신을 어루만지며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는 은혜로운 음성을 들었다. 예수께서는 옛 친구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7-19)
계시(啓示)된 책
요한이 그의 묵시록을 완성하기까지 적어도 네 번 정도 성령에 감동된다. 요한을 밧모 섬으로 유배시킨 도미티아누스는 96년 9월 18일 자유민인 스테파누스(Stephanus)에게 살해되고, 네르바(Nerva, 96-98)가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네르바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반사면령을 내렸으며, 요한도 석방되어 에배소로 돌아와 거기서 요한계시록을 완성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로 시작된다.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인데 여기서 “묵시”(黙示)란 뜻의 영어 아포칼립스(Apocalypse)가 유래하였다. 아포칼립시스는 “드러냄”, “폭로”, “현시”(顯示)를 의미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열려진 책이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숨겨져 있는 책도 아니고, 해석이 불가능한 책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이 교회가 휴거되고 난 후 남겨진 자들에게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미래주의 해석)한다. 그러나 요한에게 계시를 인도한 천사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요한계시록 22장 10절)고 말했고, 예수께서도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16절)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의 5대 7중주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기록된 특성상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교훈, 쟁투, 심판, 보상 등 4 주제로 비교적 단순하게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7사건들로 구분되는 5개의 이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교훈
① 일곱 교회의 이상(1:9-3:22)
◼ 쟁투
② 일곱 인의 이상(4:1-8:1) (7장은 간주곡으로 삽입됨)
③ 일곱 나팔의 이상(8:2-11:19) (10:1-11:14은 간주곡으로 삽입됨)
④ 일곱 쟁투의 이상(12:1-15:4) (이 부분은 “보니”라는 말로 7등분됨)
⑤ 일곱 재앙의 이상(15:5-16:21)
◼ 심판
큰 음녀(사단의 대리자, 17:1-19:21)와 사단의 심판(20:1-21:8)
◼ 보상
승리한 자들의 새 예루살렘 입성(21:9-22:15)
각각의 내용들은 다음 호부터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사망의 열쇠를 갖고 계신 예수
마스터 키(Master Key)라는 것이 있다. 주로 호텔이나 아파트 관리자들이 보관하고 있는데, 이 키만 있으면 모든 방 문을 다 열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내가 … 사망과 음부(무덤)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의 성취는 더디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 둘 쓰러지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후일 예수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믿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무덤을 찾아가 그곳에서 잠자는 자들을 하나씩 생명으로 불러내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요한계시록 1장 19절)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은 기록될 당시부터 종말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네비게이션(Navigation)이다. 이 책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길을 잘 못 든 사람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다가오는 위험을 경고한다. 요한은 책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