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지구
1912년 4월 10일 12시 15분, 영국의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은 승객 2,206명을 태우고 사우샘프턴(Southampton) 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처녀 항해에 나섰다. 이 배는 높이 30m, 너비 28m, 길이 270m, 무게 4만6,000t으로, 승객과 선원들을 합쳐 약 3천명이 탑승할 수 있었고, 고급 음식점, 도서관, 라운지, 수영장, 체육관, 호화로운 객실 등을 갖춘 떠다니는 궁전(floating palace)이었다. 특히 선체는 물에 잠기는 부분이 15개의 방수 격벽으로 구분되어 그 중의 2구역(뱃머리로부터는 4구역)이 침수해도 침몰하지 않게 설계되어 “침몰할 수 없는 배”라는 별명이 붙었다.
타이타닉은 23노트(43km/h)로 전속 항해하였다. 14일에 공포의 빙원에 들어섰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착 예정일인 17일 보다 하루 일찍 뉴욕에 도착하여 세상을 놀라게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구명정 탑승 훈련(lifeboat drill)도 취소했고, 빙산 경고도 6, 7번 받았으나 무시했다.
출항 당시 쌍안경 보관함 열쇠가 인계되지 않아 선원들은 육안으로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14일 밤 11시 40분, 북대서양 뉴펀들랜드(Newfoundland)에 이르렀을 때 전방 450미터 앞에 있는 빙산을 발견했다. 급히 배를 왼쪽으로 돌렸지만 오른쪽이 빙산에 스치면서 계속 구멍을 내 격실 5개에 물이 차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타이타닉에는 20개의 구명보트와 접이식 보트가 있었고, 제대로 타면 1,178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65명이 탈 수 있는 구명보트에 20~30명을 태우고 구명보트를 내렸기 때문에 703명 밖에 타지 못했다. 타이타닉은 빙산과 충돌한지 2시간40분 만인 새벽 2시 20분 침몰했다. 이 사고로 1,503명이 희생됐다.
타이타닉 침몰이 기후 탓?
어떤 과학자들은 타이타닉 침몰의 원인으로 엘니뇨를 지적한다. 여느 때였으면 타이타닉의 항로에 빙산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912년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북극은 한 세기 만에 따뜻한 겨울을 맞았다. 이로 말미암아 빙산에서 유난히 많은 빙괴가 떨어져 나와 작은 빙산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 아래 북대서양은 30년 이래 가장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었다. 따라서 북극에서 흘러 온 작은 빙산들이 녹지 않고 남쪽으로 계속 흘러갔다. 예년 같으면 북위 48도선을 넘어 남하하는 빙산은 한 해에 500개가 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아래 있는 뉴펀들랜드의 그랜드뱅크를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1912년에는 이 선을 넘어간 빙산의 수가 1,000개가 넘었다. 타이타닉은 기후변화가 일으킨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전속 질주하였으며, 그 결과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상 사고를 당했다.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2008년 8월 6일,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서울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양 정상은 범세계적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국 회의 프로세스’ 및 ‘청정개발과 기후에 관한 아·태 파트너십’ 등에서의 공동 노력을 포함하여, 야심차고 현실적이며 실현가능한 방안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간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제 기후변화 문제는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포함될 만큼 일반적이고 다급한 사안이 되었다. 1906년부터 2005년까지 100년 간 지구평균온도는 0.7도 올랐고 이 가운데 0.6도는 1960년 이후 상승했다. 우리나라 기온은 지난 100년 간 1.5도 올라 지구 상승률의 2배에 달한다.
1850년 기후변화 추이를 관측한 이래 최고기온을 기록한 12번 중 11번은 최근 12년 안에 일어난 것이다. 극지방 얼음은 10년 간 2.7% 줄었고 해수면은 1993년 이후 연평균 3.1㎜씩 상승했다. 이러한 기후변화의 결정적 원인은 인간활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유력한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한 대량소비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21세기 말 지구 평균온도는 최고 6.4도, 해수면은 59㎝ 상승하며 북극 빙하는 완전히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문제들
지난 2001년, 9개의 환초 섬으로 이루어진 남태평양의 투발루가 솟아오르는 바다와의 싸움에서 패배, 조국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뉴스위크가 지구 온난화 대처 능력이 가장 취약한 5개국 중 하나로 지목한 방글라데시 남부의 뱅골만에 연해 있는 볼라(Bhola)섬은 40년 만에 땅 절반이 물에 잠겼다.
유엔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가 지난 해 11월, 제27차 총회에서 채택한 최종 요약보고서는 최근 100년간 지구의 평균 온도가 0.74도 상승했다고 밝히고, 지구의 평균 온도가 앞으로 1.5~2.5도 상승하면 동식물종의 20~30%가 멸종위기에 처하고, 아프리카는 2020년까지 7500만~2억5000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IPCC는 이보다 앞선 5월에 채택한 ‘기후 변화 완화(Mitigation of Climate Change)’라는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향후 20~30년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며 “앞으로 8년 후인 2015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지구를 구할 시간이 8년 밖에 남지 않았으며, 이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을 의미한다.
지난 7월 21일, 영국 BBC 뉴스 인터넷판은 지구를 구할 시간이 100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으며, 환경분야의 뉴딜정책이라 할 수 있는 ‘그린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작년 10월 26일에는 유엔환경계획(UNEP)이 ‘제4회 지구환경전망’(GEO-4) 보고서를 통해 자연과 자원의 체계적인 파괴로 “지구는 여섯 번째 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가 국가 멸망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독일 포츠담 소재 지질연구소는 중국 역사의 찬란한 절정을 이룬 당(唐)나라가 300년을 못버티고 멸망한 것은 오랜 가뭄으로 거듭된 농민 반란 때문이었다고 발표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의 멸망 역시 가뭄 탓이었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는 전쟁도 일으킨다. 홍콩대 연구팀이 1400~1900년에 벌어진 전쟁 4,500건을 살펴본 결과,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이 확인됐다.
기후변화는 질병도 가져온다. 지난 4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기후변화로 인한 전염병 확산을 경고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강우 패턴이 바뀌면 전염병을 옮기는 곤충의 지리적 분포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께서는 종말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태복음 24장 7, 8절)고 말씀하셨다. 지구 온난화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들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더위들 또한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경종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08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