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일곱 쟁투 - (3) 예수의 삶을 재현한 사람들
요한계시록의 일곱 쟁투 개요
① 요한계시록 12장 1-17절 : 미가엘과 사단의 쟁투(시조, 2010년 3월호)
② 요한계시록 13장 1-10절 :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시조, 2010년 4월호)
③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 : 땅에서 올라온 짐승(시조, 2010년 4월호)
④ 요한계시록 14장 1-5절 : 시온 산에 선 십사만 사천
⑤ 요한계시록 14장 6-13절 : 세 천사가 전하는 기별
⑥ 요한계시록 14장 14-20절 : 두 종류의 추수
⑦ 요한계시록 15장 1-5절 :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시온 산의 십사만 사천
“보라!” 요한의 외침에 놀란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급히 날아올랐다. 그동안 세 쟁투를 보면서 요한은 크게 두려워하며 낙심하였다. 그는 첫 쟁투(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단이 중세에 배도한 기독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 쟁투(13장 1-10절)에서는 중세 기독교가 타락하고 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 번째 쟁투(13장 11-18절)에서는 기독교 국가 미국이 종교자유원칙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들에게 매매를 금지하고 심지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법적 보호가 해제된 채 사냥터의 짐승처럼 쫓길 것을 생각할 때, 노쇠한 요한은 두려워 떨었다.
그때 갑자기 환상이 지상에서 하늘 장면으로 옮겨졌다. 네 번째 쟁투(14장 1-5절)는 고난받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삽입된 것이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4장 1절)
‘시온산’은 구약시대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의미하는 의례적(儀禮的)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시편 48장 1, 2절; 오바댜 1장 17절). 요한계시록에서 시온 산은 새예루살렘과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린 양’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상징한다(5장 6절). ‘십사만 사천’은 세 번째 쟁투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도록 강요할 때, 굴복하지 않고 승리한 사람들을 상징한다. 환상은 그들의 활약상(14장 6-13절)을 보여주기 전에, 시계를 급히 돌려 최후 승리의 장면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독려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 곧 최후의 쟁투에서 승리한 성도들은 새예루살렘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새 노래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할 때(요한계시록 21장 5절), 새 이름을 가진 자(2장 17절, 3장 12절)들이, 새 예루살렘(21장 2절)에서 부를 노래이다. 요한계시록 15장 3절에서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로 표현했다.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너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을 찬양하는 것이었다(출애굽기 15장 1-21절). 새 노래는 ‘큰 바벨론’(17장 5절)의 강포에서 벗어난 것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십사만 사천의 특징
․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 - 성경은 남녀 관계를 불결한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이 문장은 결혼관계를 추천하는 다른 성경절(고린도전서 7장 1-5절)과 모순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12장 1절의 순결한 여자는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17장 1-5절의 음녀는 배도한 교회를 상징한다. 여기 ‘여자’는 13장의 땅에서 올라온 중세 기독교와 그를 추종하는 딸들 즉 배교한 개신교회들을 가리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데살로니가후서 2장 3, 4절)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계명 대신 사람의 계명에 대한 경배가 강요될 때,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계 13:8)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은 매매금지와 사형령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제휴하여 “더럽히지” 않을 것이며, 영적 “순결”을 지킬 것이다.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 “어디로”라는 단어는 예수께서 그의 백성들을 때때로 곤궁(困窮)으로 인도할 것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평안만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말할 때,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복음 10장 28-30절)고 말씀하셨다.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디모데후서 3장 12절)을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은 평안하고 여족할 때 뿐 아니라 고난과 시련의 때에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은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하늘 새예루살렘에서 예수님과 함께 서게 될 것이다.
․ 처음 익은 열매 -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다(신명기 26장 1-11절). 그것은 본격적인 수확에 앞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십사만 사천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의 대쟁투에서 승리한 자들이다(시조, 2010년 4월호 참고). 그들은 투쟁에서 놓여 더 큰 수확의 일부로 거두어져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안전히 서 있게 될 것이다.
․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 - 이것은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유하게 될 품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그들이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조상들도 흠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품성의 모든 결함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십사만 사천도 마찬가지이다.
십사만 사천의 변화된 품성을 요한계시록 19장 8절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로 묘사하면서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정의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계 7:14)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단순히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을 재현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마쳐갈 무렵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와서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요한복음 12장 21절)라고 요청했다. 지금도 세상은 교회를 향해 “우리가 예수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적은 예수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사는 것이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