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역습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물러 있을 때, 모압 여인들이 자신들의 제의적(祭儀的) 축제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초청했다. 음란한 축제를 즐기고 돌아온 후 이스라엘 진영에 전염병이 번져 사람들이 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분노한 모세는 참가자들을 잡아 교수형에 처했고, 백성들은 회막문에 모여 통곡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므온 지파의 시므리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자 고스비를 데리고 자기 장막으로 들어갔다. 제사장 아론의 증손자 비느하스는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 두 사람의 배를 꿰뚫어 죽였다. 그제야 전염병이 그쳤지만 이만 사천 명이 희생됐다(민수기 25:1-9).
재앙의 삼인조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염병은 전쟁, 기근과 함께 유명한 재앙의 삼인조(a proverbial evil trinity)였다. 또한 이 셋은 하나님의 형벌과 멸망의 대명사였다.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렘 24:10)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 전염병은 무서운 재앙이었다. 1346년 유럽에 침입한 흑사병은 다음 해에 이탈리아 전체로 퍼졌고, 알프스를 넘어서 프랑스까지 침입했다. 1349~1350년에는 독일 일대에, 그 후 영국과 북유럽까지 번져나갔다.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일 사라졌다.
흑사병은 선페스트로 생각되는데 그 외에도 한센씨병, 천연두, 디프테리아, 홍역, 인플루엔자, 결핵, 옴, 단독(丹毒), 비탈저, 트라콤(Trachom, 전염성의 만성 결막염), 전염성 발한 열병, 무답병, 매독 등이 잇달아 유행했다.
21세기는 전염병의 세기
지난 2001년 9월 6일, 중앙일보는 “전염병의 역습”이란 기사에서 “오늘날 누구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1981년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즈를 필두로 광우병과 조류독감, 병원성 대장균 O-157등 신종 전염병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최강의 항생제인 밴코마이신에도 죽지 않는 이른바 슈퍼박테리아까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전염병의 대대적인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말에 이미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는 전염병의 세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동성애자 41명에게 희귀암 발생.” 1981년 7월 3일자 뉴욕타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발생을 알리는 기사를 이렇게 전했다.
2002년 11월에는 중국 광동지역을 중심으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여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한 일간지는 사스의 충격이 9․11 테러의 5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04년 5월 11일부터 5회에 걸쳐 “21세기 재앙, 신종 전염병”이란 특집 기사를 실었다. 0139 변형 콜레라, 한타바이러스 폐증후군, 에볼라 출혈열, 니파바이러스 뇌염,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뇌염, 사스, 라임병, 조류독감 등 신종 전염병이 소개됐다.
최근 우리나라가 전염병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4월 초 전북 김제에서 발병한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달 열흘만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과 서울, 부산 등 대도시까지 번졌다. 서울과 부산 등에서 고병원성 AI가 발병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올해 발생 건수는 5월 초순까지 28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2003년 12월~2004년 3월 사이 AI는 모두 10개 시․군에서 19건이 발생했고, 2006년 11월~2007년의 경우 5개 시․군에서 7건이었다. 따라서 살처분 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최대이다. 2003~2004년과 2006~2007년은 각각 3개월 동안 약 530만 마리, 280만 마리가 매몰돼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안정비용 등으로 각각 1천5백31억원, 582억원이 소요됐다. 올해는 5월 초순까지 살처분 누적 규모가 700만 마리를 웃돌아 순수 살처분 보상금만 55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야생조류가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닭, 칠면조, 오리, 거위, 타조, 꿩, 메추라기 등에 전염되어 발병한다. 일반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는 병원성(病原性)에 따라 고(高)병원성, 약(弱)병원성, 비(非)병원성의 3종류로 분류되는데, 그 중 고병원성이 인류에게 감염되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 2008년 3월말을 기준으로 전 세계 14개국에서 379명이 감염되어 그 중 239명이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올해 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하여 광우병 파동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다. 광우병의 정식 명칭은 “우해면양뇌병증”인데, 소의 뇌에 구멍이 생겨 갑자기 미친 듯이 포악해지고 정신이상과 거동불안, 그리고 난폭해지는 등의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흔히 광우병이라고 부른다. 발병원인은 프리온 단백질의 화학구조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미국 예일 대학 의과대학 신경병리학자 로라 마누엘리디스 박사가 바이러스에 의한 발병설을 발표하였다.
한편,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은 지난 4월 산둥(山東)성에서 시작된 수족구(手足口)병을 일으키는 '장(腸)바이러스'로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장 바이러스 중에서 특히 인체에 치명적인 '엔테로바이러스(EV 71)'가 베이징을 비롯한 전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5월 9일 현재 2만7천499명이 감염됐고, 34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수족구병은 미국 뉴욕주 콕사키에서 처음으로 바이러스 분리에 성공했다 해서 '콕사키'라는 이름이 붙은 콕사키 바이러스 A16에 감염되면 손, 발, 입속 등에 작은 물집이 생기는 급성전염병으로서 주로 여름철에 발병한다. 호흡기와 대변, 침을 통해 사람과 사람, 특히 어린이들 간에 쉽게 전염되고, 40도 이상의 고열로 열꽃이 생기며 경기를 일으킨다. 설사, 구토 등의 증세를 동반하기도 하나 대개 일정기간이 지나면 스스로 항체를 형성해 저절로 낫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종(種)간 장벽의 붕괴가 부른 재앙
울산의대 이재담 학장은 “인간과 조류·소 등은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진 동물이며 두 종(種) 간엔 뛰어넘기 힘든 장벽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가까이 지내면서 종간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인간에게 발생 가능한 1700가지 전염병 가운데 75%가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다. 최근 들어 사스·에볼라·AI·광우병 등 신종 인수 공통 전염병이 늘어나는 것은 도시화, 산림 파괴로 인한 노출 기회 증가, 야생동물 매매, 가축의 집단 사육, 애완동물의 다양화 등이 그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종말의 징조로 천연재해를 들었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1)
이 원고를 쓰고 있는 동안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하여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수만 1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번 지진은 1976년 24만명의 사망자를 낸 탕산 대지진 이래 중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지진이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눅 21:28)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원장
시조, 2008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