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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2:24

희망(希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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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希望)

 

런던의 랍비인 휴고 그린(Hugo Gabriel Gryn, 19301996)은 독일 집단 수용소에서 겪은 한 체험담을 전후(戰後) 독일의 데르 모르겐(Der Morgen) 잡지에 이렇게 기고했다.

“1944년의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아버지는 나와 몇 친구를 수용소 건물 한 구석에 모이게 하셨다. 아버지는 그날이 유대인의 명절인 하누카의 저녁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진흙 주발에 수용소에서 좀처럼 구하기 힘든 귀한 버터를 녹여 심지를 적시고 촛불을 대신하여 불을 켜셨다. 나는 그 귀한 버터를 먹지 않고 낭비한다고 항의했다. 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도 3주간은 살 수 있다. 우리는 한때 물을 마시지 않고 3일을 살아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단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그림

2008년 말, 영국 런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에 소장되어 있는 희망”(Hope, 1886)이라는 그림이 갑자기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그림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와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가 그린 것이다. 버락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그림이 자신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바 있다. 결국 그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20091월 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희망이란 그림은, 한 여성이 커다란 구() 위에 앉아 애처로운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의 눈은 붕대로 가려져 있다. 악기는 리라(lyre) 즉 수금이다. 그런데 수금의 줄은 다 끊어지고 단 한 줄만 간신히 남아 있다. 이 그림의 커다란 구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의미한다. 눈을 가린 여자는 인류를, 수금의 끊어진 줄들은 인간의 절망을,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줄은 희망을 상징한다. 이 그림은 우리 인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가닥 남은 희망에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George_Frederic_Watts,_1885,_Hope.jpg

오바마는 이 그림을 보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려는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26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침침한 감방 벽에 걸어 놓고 수도 없이 바라보았다는 그림도 바로 이 그림이다.

말틴 루터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고 하였다.

 

희망고문

희망고문이라는 말은 가수 박진영이 러브에세이에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말의 원조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Auguste Villiers de l’Isle-Adam, 1838~1889)이 쓴 단편 소설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The Torture by Hope)이다. 유대 랍비가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다. 어느 날 탈출구를 발견하고 탈옥에 성공하는 순간, 종교재판소 소장이 다시 그를 붙잡는다.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운명의 저녁은 미리 준비된 고문이었다. 바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 릴아당은 희망을 갖게 했다가 다시 빼앗아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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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희망이 없었더라면 일찍 포기하고 손을 뗄 수 있었을 텐데, 일말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그것을 붙들고 무엇인가 해보려 노력하다가 끝내 수포로 돌아갔을 때의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단어가 바로 희망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타짜라는 영화에서 정 마담이 이렇게 독백한다. “화투판에서 사람 바보로 만드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희망. 그 안에 인생이 있죠. 일장춘몽.” 다음 판에서 터질 것 같은 희망, 그러나 결국 빈손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노름이고, 그것이 희망고문인 것이다.

1516,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상상의 섬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이상향으로 번역되는 이곳은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假想)의 이상국이다. 이 사상은 토마스 캄파넬라의 도시와 태양”, 요하네스 안드레아의 크리스티아 노폴리스 공화국 묘사”,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 볼테르의 캉디드등 수많은 문학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유토피아란 말 자체가 그리스어의 ou(없다)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땅에 그런 이상향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맞았다. 새해마다 우리는 희망찬 새해라는 말을 쓴다. 왜냐하면 우리는 희망이 없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진정한 희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시선은 2016년 한 해를 넘어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은 평생 그곳을 소망하며 산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으나, 앞으로 올 것들을 멀리서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일 뿐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고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히브리서 1113, 16)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201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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