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서 들어라, 작은 귀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한 인터넷 방송을 링크해 보내면서 들어보라 했다. 익히 아는 침례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라서 건너뛰면서 들었다. 그런데 결론은 이렇게 중요한 침례를 우리 교회 목사들이 실적을 올려 출세하려고 돈을 주고 침례를 베풀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서 약 10분 정도 듣다 꺼버렸다.
나중에 확인된 실제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교회가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수시로 양말이나 속옷, 신발, 차비 등을 도와드렸다고 한다. 나중에 전도로 연결되어 ‘오늘의 신앙’ 단체 졸업식도 했고, 침례까지 받게 되었다. 그때마다 축하 선물로 꽃다발을 주었는데, 노인들에게는 꽃보다 돈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기왕 들어가는 꽃값을 현금으로 드렸다고 한다. 이것이 목사가 출세하려고 돈을 주고 침례를 준 사건으로 둔갑한 것이다.
개인 방송 시대의 도래
IT(정보기술) 산업의 발달은 개인 방송 시대를 열었다. 이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과거 미디어(대중매체)는 하나의 권력이었고, 소수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신수단의 발달로 각 개인이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된 것이다.
포드캐스팅(Podcasting, 혹은 팟캐스팅)의 등장으로 누구나 쉽게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사회관계망서비스)의 발달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고, 인맥을 확대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그리고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밴드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SMS(Short Message Service, 단문 메시지 서비스) 등장으로 개인 간 의사소통 뿐 아니라 각종 정보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각 통신사의 문자 서비스나 카카오톡 등이 있다.
역기능과 부작용
이러한 의사소통수단의 발달로 일반 대중들이 주로 듣는 입장에서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장점으로는 개인의 의사표현 기회가 증가하고, 민주주의가 신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점으로는 무분별한 허위 정보를 제어하기가 어렵고,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사회적 혼란을 양산하기도 한다.
임신부 폭행 루머로 순식간에 브랜드 가치를 잃은 ‘채선당 사건’도 있었고, 식당에서 아이와 부딪혀 된장국물이 쏟아지면서 화상을 입은 사람이 아이에게만 화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람으로 내몰린 ‘된장국물녀’ 사건도 있었다. 나중에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회사나 당사자의 손실이나 명예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후였다.
2010년에 시작되어 2012년에 재판으로 끝난 ‘타블로의 학력위조 논란 사건’도 있다.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 회원들은 타블로에 대해 집단 공격을 시작했고, 타블로의 형, 아버지, 누나, 어머니까지 신상털이를 당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2년 타진요 회원 11명 중 선처를 받은 2명을 제외한 9명의 유죄가 확정되고 그중 3명은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종결되었다.
기독교발 루머의 시대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는 “개신교발 거짓 소문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도를 넘은 기독교발 거짓 소문을 검증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기독교 루머와 팩트’ 그룹과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기독교 루머와 팩트’는 공지사항에 “무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거짓 지식을 두려워하라. 이 세상의 모든 악은 그것에서 시작되느니.”라는 파스칼의 경구(警句)를 올려놓았다.
과거 본 교회 안에서는 주기적으로 이설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인터넷이 등장한 후에는 주로 재림마을 등 특정 홈페이지를 통해 이설이나 루머가 번져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라디오나 SNS 등을 통해 교단이나 지도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생산되고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개 교단 지도부에 대한 실망감이 발생할 때 루머도 발생한다. 따라서 투명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행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도들은 비공식 매체를 통해 생산되고 파급되는 각종 루머에 신중해야 한다. 이런 루머들은 대개 특정 사건을 마치 전 지도자, 전 교회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하기도 하고, 거짓을 보태 듣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단을 향한 개인적 보복을 마치 공의를 위한 투쟁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엘렌 G. 화잇은 “사단의 계책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한다. 불순한 생각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을 읽고, 보고, 듣는 일을 피하여야 한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285)고 경고했다. 나치의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고 하였다. 불순한 방송이나 글들을 호기심으로 접하다 보면 처음에는 ‘설마...’하지만 서서히 믿게 되고, 교회와 진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고, 결국 자기 영혼을 망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진리에 대한 흥미와 확신을 잃고 있는 것은 스스로 불신과 밀접한 연관을 맺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혹, 의문, 불신의 공기를 호흡한다. 그들은 불신을 보고 듣는 가운데 마침내 그것을 품게 된다. ... 그렇게 되면, 사단의 계획은 성공하게 된다.”(증언보감 1권, 573)
예전에 많이 불렀던 어린이 찬미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조심해서 보아라 작은 눈
하늘에서 예수님 사랑으로 보시네
조심해서 보아라 작은 눈
조심해서 들어라 작은 귀
하늘에서 예수님 사랑으로 보시네
조심해서 들어라 작은 귀
지금은 조심해서 보고, 조심해서 들어야 할 때이다. 더 안전한 것은 불건전한 방송의 앱을 지우고, 페친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 이글은 2017년 교회지남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