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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필자가 전에 각종 잡지에 쓴 것이나 설교문을 옮긴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

당신을 사랑합니다 / 그대 밖에 모르는 마음으로 / 내가 만나리라고 생각지 못한 사랑으로 / 단 한번만 찾아오는 / 결코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사랑으로 /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지속될 영원한 사랑으로 말입니다.

“A Love until the End of Time”(영원한 사랑)이란 노래의 첫 부분이다.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와 모린 맥거번(Maureen McGovern)의 클래식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잘 조화된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결혼식 축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사랑,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속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이 사랑도 조수미가 부른 “Love is just a Dream”(사랑은 꿈과 같은 것)이란 노래에서 끝나고 만다.

꿈이었나 너를 떠나온 날 /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어 / 기억조차 하기 힘든 지금 / 사랑이란 이미 끝났다오. / 그대와의 사랑의 추억은 / 차가운 옛날의 옛날일 뿐 / 무성한 들녘의 외로움에 / 내 서늘한 옷깃을 여미네.

그렇다고 사랑의 아픔 때문에 사랑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랑이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C. S. 루이스는 “우리는 에로스(이성 간의 사랑)에서 태어나고, 스톨게(부모자식 간의 사랑)에서 성장하고, 필로스(친구 간의 사랑)에서 성숙하고, 아가페(하나님의 사랑)에서 완성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송해월 님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에는 / 모든 게 한 순간에 부질없어지고 말아도 /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사람의 사랑에 목숨 걸고 / 사람은 사람의 마음에 스스로 갇히고 / 사람은 사람의 가슴에다 꽃씨를 심고 / 사람은 사람에 기대 살 수 밖에 없어.

■ 포도주가 떨어지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공생애를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시작하셨다. 양가(兩家)가 요셉과 마리아의 친척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 잔치에 참석했다. 혼인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 하인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포도주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것은 접대 소홀로 인식될 수 있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예수께서는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게 하고는 포도주 대신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 물을 맛본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이렇게 칭찬했다.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요한복음 2장 10절, 표준새번역).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의 열정도 식는다. 잔치에 포도주는 떨어지고 빈 항아리만 남는다. 어떤 사람은 그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10대는 꿈속에서 그리며 살고
  20대는 서로 신이 나서 살고
  30대는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는 체념하며 살고
  50대는 가엾어서 살고
  60대는 없어서는 안 되기에 살고
  70대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고마워서 살게 된다니 천만 다행이다.

■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한 통계에 의하면, “결혼지속기간에 따른 배우자 만족도”에 있어서 결혼 1년째 부부들은 75%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해 결혼 5년째는 50%로 떨어진다. 이후 남성들은 대체로 50% 전후를 유지하지만 여성들은 이보다 더 하락해 30%까지 떨어진다. 그리고 처음에 많은 비율을 차지하던 열정은 크게 떨어지고 의무감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미국 코넬대학교 신시아 하잔 교수는 “애정이란, 대뇌에서 옥시토닌, 도파민, 페니레시라민 등 3가지 화학 물질이 분비돼 형성되는 일종의 정신상태”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에 의해 결혼 초기에는 상대방이 뭘 해도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인다. 그러나 그 기간은 18개월에서 길어야 30개월 정도면 끝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좋은 포도주가 떨어지고 항아리는 비게 되는 것이다.
열정은 두 남녀를 결합시키고 자식을 낳게 하지만, 그러나 상당한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열정이 식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생활도 불가능할 것이고, 생존에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2년쯤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애정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열정이 식어버리고 나면 서로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부부는 열정을 친근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성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포도주(열정)가 떨어진 항아리(부부관계)에 물(친근감)을 채운 것이다.
그러나 열정을 친근감으로 대체하는 대신 또 다른 열정을 찾는 부부는 결국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열정마저 없이 어떤 조건이나 연민 때문에 만난 경우, 초기의 육체적 관계를 통한 열정이 식고나면 실망하게 되거나 극심한 증오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사랑의 항아리가 빈 것을 발견했다면 지금도 늦지 않다. 둘이 함께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러면 다시 좋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된다.

■ 어떻게 채울 것인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 받는’ 문제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정의하기를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며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사랑은 원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빈 항아리를 상대방이 채워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채우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비결이다.
유치환 님의 “행복”이라는 시를 읽으며 가을을 초대해 보자. 그리고 함께 사는 이에게 작은 사랑의 표현을 건네보자.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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