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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11:39

물질주의(物質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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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주의(物質主義)

 

아빠! 주방 가스렌지 배기관에 쥐가 들어왔나봐요.”

지난 4월 어느 날, 딸의 다급한 부름에 후드 배기관에 귀를 기울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배기관을 두드리면 이내 조용해졌다. 다음날 아침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오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배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하, 쥐가 아니고 새였구나.’

그때부터 우리 가족들은 새가 배기관 안에 집을 짓지 못하도록 두드리기도 하고, 몇 시간씩 후드 팬을 틀어놓기도 했다.

5월 어느 날 새벽, 주방에서 물을 마시는데 어디선가 속삭이듯 재잘대는 새소리가 들렸다. 주방 창문 밖으로 벌레를 문 어미 새가 부지런히 드나드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그 새는 기어코 집을 완성한 후, 알을 낳고 여러 날을 품어 드디어 새끼를 부화시킨 것이다.

나는 방문을 열고 아직 이브자리에 있는 가족들에게 빨리 나와 보라고 나직이 재촉했다. 우리는 눈을 반짝이며 배기관에 귀를 기울였다. 여린 생명들의 재잘거림은 우리 가족에게 경이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들은 주방에 갈 때마다 새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하고, 후드 팬 사용도 전면 중단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숨소리를 죽이고 새끼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는다. 이 글이 시조지에 실릴 때쯤이면 아마 새끼들이 자라나 둥지를 떠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지난 4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탑승객 476명 중 172명만 구조됐고, 사망자 수가 304명에 이르는 대형 참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물욕에 눈이 어두워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런 불의를 묵인해준 무책임한 행동들이 결국은 살생의 업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의 최대 화물 적재량은 1,077톤이라고 한다. 당시 세월호 안전 점검 보고서에는 화물 657, 컨테이너 0, 자동차 150대로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컨테이너만 105개로 1,157톤에 달했고, 자동차는 180대였다. 규정대로 화물을 실으면 최대 26백만 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사고 당일 챙긴 선임료는 두 배가 넘는 62백만 원이었다. 세월호는 이런 식으로 그동안 241차례 운항 중 무려 139차례를 과적 운항해 296천만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물욕에 눈이 멀어 귀중한 생명을 소홀히 한 결과 대형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의 자화상

재미언론인 조광동(69)씨는 지난 5, 자신의 블로그에 세월호는 한국인의 자화상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조씨는 이 글에서 선장 선원이 도망쳐 나온 것을 거품 물고 욕하지만그들은 어쩌다 돌출한 별종의 사람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 문화의 산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유럽이 150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불과 15~20년 만에 이뤄냈다. 독일 뮌헨대 울리히 베크(Beck·70) 교수는 이러한 압축적인 근대화로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 안에 수많은 위험 요소가 포함돼 있었고, 유럽과 달리 한국 사회는 그것들을 해결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일제 식민시대와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를 불과 50년 만에 세계 10대 무역국이자 IT 강국으로 일구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주의에 함몰되고 말았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한국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고,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특히 물질중심주의적 가치관은 최빈국인 짐바브웨보다 심하다.”고 분석했다.

 

어리석은 부자

예수께서는 형제 간 유산 문제로 다투는 젊은이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 참생명과 참삶은 우리가 얼마나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누가복음 12:15)고 말씀하시고, 한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풍년으로 엄청난 수확을 거둔 부자는 이제 여러 해 동안 편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네가 죽으리니 그러면 네 재산은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책망하셨다.

디너 교수는 물질중심주의적 가치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관계나 개인의 심리적 안정 등 다른 가치를 희생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돈 버는데 몰두하느라 대인관계나 취미생활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후드 배기관에서 들려오는 여린 생명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주는 경이와 감동이 돈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현대 물질주의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다.

부하게 되려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어떤 이들은 돈을 사모하다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렀다.”(디모데전서 6:9, 10)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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