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기 위한 준비

by 로뎀 posted Apr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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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고는 필자가 노원구청 <웰다잉> 프로그램에서 강의한 것입니다.
 
잘 죽기 위한 준비
 
2018년 416일 배우 최은희 씨가 별세했다. 향년 92세였다. 그녀는 1960년대를 전후로 한국 영화 황금기 스크린을 누빈 톱스타였다.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지만 76년 이혼했다. 그러다가 1978년 신상옥 감독과 차례로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결합했다. 8년 만에 탈출해 10년 넘게 미국에 머물다 99년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2006년 신 감독이 죽고 4년쯤 전부터 신장질환으로 투석을 받고, 척추협착증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살았다. 그녀는 죽기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화려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패물 하나 없다. 촬영장마다 짐을 풀고 다시 싸는 ‘트렁크 인생’이었다. … 돈 한번 풍족하게 쓴 적도 없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자신의 장례식장에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틀어 달라고 요청했다.
최은희.jpg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 김도향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 그냥 덧없이 살아버린 /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 흘러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가사가 후회와 회한이 가득한 노래이다.
 
1. 천하보다 귀한 생명
 
  1) 모든 생명이란 기적이다.
  현대 모든 의학, 과학 지식을 총 동원해도 들꽃 하나 창조하지 못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논이 없어지고 공장에서 쌀을 만들거나, 과수원이 없어지고 공장에서 사과를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기적이다.
 
  2) 생명이란 단 한번 뿐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듯이, 지나간 생명 또한 돌이킬 수 없다. 전래 민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마라
    명년삼월 봄이 되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한번가면 못 오나니
    빈손으로 나왔다가 빈손들고 가는 인생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한 조각 뜬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
    풀잎에 이슬이라 공수래 공수거
    물위에 거품이라 일장춘몽 꿈이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삶을 받았든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은 잘 사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는 것이 아니다. 1974,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행복에도 한계효용감소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소득이 15천 달러가 정도를 넘으면 행복감은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2. 잘 살기(Well-Being)
 
2000년 이후, 국내에 웰빙(Well-Being)이 유행했다. 본래 복지나 행복의 정도를 의미했지만, 요즘은 특정한 생활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나, 건강 관련 제품에 붙는 수식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를 참살이로 규정했다.
1970년대 새마을 노래와 함께 많이 불렸던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1) 잘 사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 만해?” 하고 물으면 저는 곧잘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 물론 잘살고 있지.”
  제가 잘 산다는 것은 세상이 말하는 잘 나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 잘 나간다는 거엔 도무지 관심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강렬합니다. 제게 잘 산다는 건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김종원, 생각 공부의 힘)
 
 
  2)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인간의 꿈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살았다 하더라도 죽음을 잘 맞지 못한다면 결코 잘 산 것이 아니다. 독일 속담에 “Ende gut alles gut(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음과 마주하더라도 의연하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삶(Well-Dying)이 잘 사는 것(Well-Being)이다.
 
3. 잘 죽기(Well-Dying)
 
  1) 오복(五福, 書經)
    (1) () :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
    (2) () :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의 복()
    (3) 강령(康寧) :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
    (4) 유호덕(攸好德) :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
    (5) 고종명(考終命) :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
 
  2)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1) 익숙한 환경에서, (2)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3) 가족·친구와 함께, (4)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4. 죽음 준비하기
 
  1) 죽음의 질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는 국가별 완화의료 정책을 비교·평가할 수 있는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를 발표한다.
2015년 발표에 따르면 80개국 중 1위가 영국이며, 우리나라는 18위였다. 이 지수는 임종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고, 가족이 심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죽음을 앞두고 방문할 수 있는 병원 수 치료의 수준 임종과 관련한 국가 지원 의료진 수 등 20가지 지표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2) 심리적 준비
  인간은 중년이 되기까지 자신의 삶이 무한하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인지적 착각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삶의 끝에는 예외없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결국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허둥대기 마련이다.
외부 환경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심리적 준비와 이해이다. 비록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적절한 죽음교육을 받으면 두려움이나 당황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결국, “어떻게 해야 잘 죽을 것인가?”로 시작된 웰다잉의 질문은, 마침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수용하고 미리부터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노인의학자이며 60대 암 생존자인 존 던롭(John Dunlop)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잘 죽는 것이 우연인 경우는 별로 없다. 그것은 평생에 걸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일부러 계획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오늘날 그런 계획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Tuesdays with Morrie)”에서 미치 앨봄(Mitch Albom)은 말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 지 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안다.”
 
  3) 죽음 받아들이기
  가톨릭대학교 생명윤리연구소 구인회 교수는 <현대인에게 있어 죽음의 의미와 그 도덕적 문제>에서 죽음이란 죽음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야 마지못해 죽음과 직면하여 생각해 보는 생의 종국이라기보다 모든 생의 국면과 결정에 동참하는 생의 차원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명사들 사이에 이별 파티가 유행이라고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자신이 부고장을 보내고, 아는 지인들과 장례식을 갖는다. 이렇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작업을 인생종결 활동(終活·슈카쓰)’, 죽기 전에 갖는 마지막 파티를 생전장(生前葬)’이라고 한다. 종활과 생전장은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4) 웰다잉 10계명
  웰다잉의 목표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점검할 사항들을 예시한다.
    (1) 건강관리 : 죽는 날까지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규칙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건강관리를 한다.
    (2) 자원봉사하기 : 건강할 때 자원봉사를 자원한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결국 자신을 돌보는 일임을 기억하라.
    (3) 자서전 쓰기 :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감사하고, 반성하며, 자신이 후대에게 전해줄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작업을 위해 자서전을 쓴다.
    (4)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 꼭 하고 싶은 일, 해결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정하고 하나씩 실천한다.(영화 버킷리스트 참조)
    (5)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하고, 기억하고 싶은 사진이나 편지, 선물, 기념품 등을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둔다. 소지하고 있던 물건 중 나눠줄 물건, 버릴 물건 등을 정리한다.
    (6) 마음의 빚 청산하기 : 물질적인 빚을 청산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과 화해한다.
    (7) 유언장 작성하기 : 자녀 간 재산 분쟁을 막고, 자식들에게 삶의 가치와 지혜를 남겨주는 유언장을 작성한다. 또 살아생전 신세를 지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기록해 놓는 것도 좋다.
    (8) 우아한 마지막 준비하기 :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인공호흡기 등을 장착하거나 심폐소생술, 수혈 등을 받을 지 등을 적은 사전의료의향서와 혹시 찾아올지 모를 치매를 대비해서 사전치매의향서등을 작성해 둔다.
    (9) 자신의 장례식 준비하기 : 자신의 사후 원하는 장례방법과 절차 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장례식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도 작성해 둔다.
    (10) 내세에 대한 소망 가지기 :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다음 생에 대한 소망을 가짐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생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