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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11:10

인생무상(人生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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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무상(人生無常)

 

얼마 전 주말, 바쁜 일정으로 한동안 집에 가지 못했더니 아내가 산속에 자리한 연수원을 찾아왔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잠간 시간을 내어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진입로 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얼마간 내려갔는데, 아내가 왼쪽 언덕으로 난 샛길을 가리키며 이리가면 어디가 나오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늘 안 가본 길을 궁금해 하고 나는 늘 가던 길로만 다니는 습관이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럼 가보자고 한다. 무성한 밤나무 뒤로 난 길을 따라 얼마큼 올라가자 방금 지나온 길이 저 아래 보였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한참을 올라가자 한 초라한 집이 나타났다. 대문은 제주 정낭(나무 3개를 걸쳐 놓은 대문)처럼 굵직한 나무 기둥 하나를 걸쳐 놓은 게 다였다. 대문 바로 옆에는 판자를 이어붙인 낡은 움막집이 있었고, 마당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컨테이너 집이 있었다. 그리고 마당 좌우편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슬쩍 쳐다보고 지나가려는데 두 무덤 옆과 컨테이너 벽에 써놓은 글들에 호기심이 일어 다가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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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풀 베지 말아라

마당 오른쪽에 있는 초라한 무덤 옆에는 다음과 같은 시 한편이 판자에 적혀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 그리운 날 / 감자꽃 핀다. //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 허기진 유년의 가난 속으로 / 눈물로 피는 하얀 감자꽃 // 피난 가다 죽은 형과 / 정신 나가 죽은 / 누이를 가슴에 묻고 / 말없이 감자를 심으시던 아버지 // 그때 소리 없이 흘리시던 눈물을 먹고 / 씨알은 점점 굵어가고 / 그 감자를 먹으며 우린 / 가난의 강을 건넜다 // 지금도 아버지 그리운 날 / 추적추적 비 내리고 / 하늘 위로 흐드러지는 / 하얀 감자꽃

연구실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원시(原詩)는 이동호의 감자꽃이었다. 원시의 어머니아버지로 바뀌었고, ‘서울 간 누이와 집 나간 후 소식 없는 형을 가슴에 묻고피난 가다 죽은 형과 정신 나가 죽은 누이를 가슴에 묻고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무덤이 글쓴이의 부친인 것 같고, 개작한 시구(詩句)는 그 아버지의 삶의 일부를 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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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정중앙에 위치한 컨테이너로 가보니 벽에는 명천 이문구(1941-2003)의 소설 산 너머 남촌에서 인용한 시가 쓰여져 있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낳아서 초야에 풀처럼 살고 / 죽어서 숲 속에 풀거름이 되었다 / 지는 해 뜨는 달은 만년을 가는데 / 싹 나자 시들으니 한 세상 초로구나 / 사람들아, 무덤에 풀 베지 말아라 / 인간사 덧없음을 여기서 알리라.”

특히 무덤에 풀 베지 말아라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해와 달은 만년을 가는데사람은 죽어 진토(塵土되어 흩어지니 무덤에 풀은 베어 무엇하겠는가곁에서 함께 글을 읽던 아내도 아무 말이 없다.

컨테이너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안을 들여다보니 간이침대엔 낡은 이블이 개어져 있고그 옆으로는 소파도 있었다처마에 이어 붙인 부엌에는 살림살이가 다소 있었으나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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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테이너 왼쪽에 또 하나의 무덤이 있었다. 아까 그 무덤이 아버지의 무덤이라면이 무덤은 감자꽃에 인용한 '정신나가 죽은 누이'의 것일까? 무덤 옆에는 신라의 승려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적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매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극락필자 )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한 가지’ 즉 한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나는 간다는 말 한 마디 못다 이르고 죽은 누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함을 한탄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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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諸行無常)

부처의 삼법인(三法印) 제행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제행(諸行)’이란 세상 모든 것을 의미하고, ‘무상(無常)’항상 함이 없다는 뜻이다. ,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우주만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 즉 생성되고, 존재하고, 무너지고, 없어진다. 생각 또한 생주이멸(生住異滅), 생겨나고, 작용하고, 변화하고, 소멸한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도 생로병사(生老病死) ,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가 고통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연인들이나 부부들이 변해버린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은 제행무상을 잊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 또한 죽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불패의 태양도 수명이 있다고 한다. 핵우주 연대학에 따르면 태양의 수명은 약 1236500만 년인데, 현재 나이는 약 46억 살이라고 한다. 78억 년 후면 태양도 그 수명이 다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인생무상(人生無常)’삶이 허무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본래 의미는 인생은 항상 같지 않고 덧없다는 뜻이다. 옛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다. 직역하면 열흘 붉은 꽃은 없다인데,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이상 피울 수 없다는 뜻이다. 청춘도 영원히 머물지 않고 곧 쇠한다. 기쁨과 행복, 고통과 슬픔도 일시적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산정무한(山情無限)을 쓴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은 금강산에 올라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무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角逐)을 다투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도 암연(黯然)히 수수(愁愁)롭다(마음이 서글프고 산란하다).”

 

어리석은 부자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선생님, 제 형더러 제 몫의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후 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떤 부자가 풍년이 들어 곳간을 가득 채우고도 곡식이 남았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그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 쌓아두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모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그렇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지 않고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다.”(12:16-21)

이 부자가 열심히 일해서 많은 재물을 얻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이 어리석은 부자가 죽음 이후를 전혀 대비하지 않은 데 있다.

올해도 마지막 달이 되었다.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연말은 우리 인생에도 종착역이 있음을 매번 일러준다. 한 해 동안 소망하고 집착했던 것들이 과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는지 돌아보자. 이 무상(無常)한 세상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법을 가르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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