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복(熱福)과 청복(淸福)

by 로뎀 posted Feb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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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이른바 복이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관인(官印)을 허리에 두르고 풍악을 잡히고 미녀를 끼고 놀며,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초헌(軺軒 종2품 이상이 타던 수레)을 타고 비단옷을 입고, 대궐에 출입하고 묘당(廟堂)에 앉아서 사방의 정책을 듣는 것, 이것을 두고 ‘열복(熱福)’이라 한다.

 

깊은 산중에 살면서 삼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며, 맑은 샘물에 가서 발을 씻고 노송(老松)에 기대어 시가(詩歌)를 읊으며, 당(堂) 위에는 이름난 거문고와 오래 묵은 석경(石磬 악기의 일종), 바둑 한 판[枰], 책 한 다락을 갖추어 두고, 당 앞에는 백학(白鶴)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화초(花草)와 나무, 그리고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돋구는 약초(藥草)들을 심으며, 때로는 산승(山僧)이나 선인(仙人)들과 서로 왕래하고 돌아다니며 즐겨서 세월이 오가는 것을 모르고 조야(朝野)의 치란(治亂)을 듣지 않는 것, 이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 한다.

 

사람이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은 오직 각기 성품대로 하되, 하늘이 매우 아끼고 주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청복(淸福)인 것이다. 그러므로 열복을 얻은 이는 세상에 흔하나 청복을 얻은 이는 얼마 없는 것이다.”
 

/ 다산 정약용, 다산시문집 제1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