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시어머니

by 로뎀 posted Oct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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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 / 수기공모 대상글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 먹고, 못 입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졸업 후,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님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하셨다.

 

10년 전,  결혼 만 1년 만에 친정엄마가 암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말라고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해 주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하자 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말고 ..... 내일 3시간만 시간 내 다오"
다음 날 시어머님과의 약속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님이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맥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셨다.
그리고 백화점에 데려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 선식도 사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되있어. 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님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받으셨지만,  이듬 해 봄...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님은 한 걸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님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 우리의 결혼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시어머님은 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사는 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님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님는 내 동생까지 잘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나 이상으로 잘 지내주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님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받겠다고...
시어머님께서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 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 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님께 따로 인사드리고 싶다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부부, 동생네.
그 때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
혼주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 안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내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시어머님의 49제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등켜안고 시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 베풀어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