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란 무엇인가?
오늘은 “칭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서울 시내에 갈 일이 있어 자동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 직진 신호를 보고 그대로 주행을 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길에서 트럭 한대가 올라오더니 서지를 않고 도로에 진입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마 올라오면서 다리 난간에 가려 제 차가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저는 급히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트럭은 그대로 도로에 진입했고, 제 자동차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제 자동차와 트럭 모두 많이 파손이 되었습니다. 저는 트럭 운전사가 당연히 잘못을 인정하고 변상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가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변상을 요구했습니다. 당시는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라 돈이 없어 자동차 보험도 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제 자동차 수리는 고사하고 상대방 자동차까지 수리해 준다는 것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대방의 잘못이 드러나고 증인도 나타나 사건이 잘 수습되었지만, 거의 두 달 동안 저는 염려와 불안으로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신명기 25장 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여기 “의인은 의롭다 하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연구할 “칭의”입니다.
칭의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그들을 죄와 형벌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동이라고 정의됩니다. 이 칭의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 아직 내적 본성이 의롭게 되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에 의해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되는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경험입니다.
이것은 제 자동차 사고에서 경찰에 의해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언되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제 자동차가 수리되지 못했고,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일단 경찰에 의해 제가 잘못이 없다고 밝혀진 순간 저는 모든 책임과 처벌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상쾌함과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 칭의가 필요한 것입니까?
첫째, 모든 사람이 정죄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은 아담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에게 가장 먼저하시는 일은 이러한 정죄상태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칭의의 결과를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이 칭의의 사법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죄에 따른 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칭의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더러운 옷”이란 문자적으로 “더러운 걸레” 혹은 “사용한 생리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선행을 한다할지라도 그것은 더러운 걸레와 같아서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스가랴서 3장에는 더러운 옷과 관련한 아름다운 표상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곁에는 사단이 서서 그의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그때 스가랴가 하나님께 청원을 합니다. 5절에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입히신 아름다운 옷, 그것이 칭의의 옷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공로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4-8절에서 칭의의 축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4-8)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 사람은 누구도 그 품삯을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대가로 생각할 것입니다. 바울은 칭의가 우리의 선행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니고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칭의는 우리의 선행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일을 아니할지라도” 즉 어떤 선행이 없을지라도, 심지어 “경건치 아니한 자”라도 자기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는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의 마음 속에 죄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의롭다 하시고 죄와 형벌에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지만, 아직도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고,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우리를 이미 의롭다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3절과 34절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므로 우리가 모든 송사와 정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의 칭의와 어떻게 관련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소극적인 면에서 죄의 형벌을 취소시켰으며, 예수님의 부활은 적극적인 면에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4장 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AWR, 2004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