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과의 관계

by 로뎀 posted May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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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과의 관계

 

오늘은 믿음과 행함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까, 아니면 믿음과 행함으로 받습니까? 다음 두 성경절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갈라디아 2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다음에 야고보서 224절입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2:24)

 

갈라디아서는 분명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 맞습니까? 성경은 모순되는 두 가지 견해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까?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로마서 327, 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라디아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에베소서 28, 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렇다면 야고보서 224절의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야고보서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나 에베소서와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갈라디아 210절은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210절도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말합니다. 서로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야고보서 2장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제시할 때 따르는 몇 가지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야고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참된 믿음은 이에 상응하는 행함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마귀도 가진-그저 지식으로만 아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나는 참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과 행함이 함께 있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을 갖게 되면, 마땅히 그에 따르는 행함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아주 실제적인 예를 듭니다. 야고보서 215절로 17절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마찬가지로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할 헛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이 야고보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1517년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는 기독교 교리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받은 결과 사람들의 생애에 마땅히 나타나야 할 결과들은 무시되어 왔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계명들이 무시되어 왔고, 오히려 계명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로 매도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의 도덕력은 약화되었으며, 사회적 영향력 또한 감소되어 왔습니다.

 

해외선교연구센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04년 세계 기독교 인구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해 20억을 넘어섰습니다. 세계인구의 약 1/3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악이 더욱 성행하고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현대 교회가 올바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가르치지 못한 결과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단순히 어떤 정신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언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구원받는 면허장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구원을 받는 사람은 믿음으로 죄를 지을 면허장을 받았기 때문이고, 멸망을 받는 사람은 면허장 없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죄를 짓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잘 참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도 아닙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죄인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세력에서 실제적으로 벗어나는 경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31절과 32절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33)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가 주는 자유가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이 자유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인간을 위해 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가 자연스럽게 율법에 순종하고 따르게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경험을 요한일서 5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진정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있어서 계명은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AWR, 2004년 4월 27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