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나 성경을 대하게 되면 “구원”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구원과 구제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구제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위험이나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여 줌”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다음에 “기독교에서, 인류를 죄악과 고통과 죽음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구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구제란 사회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구원이란 종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굶어죽게 된 사람에게 음식을 주거나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옷을 주는 것은 구제이지 구원이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33절에서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이래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는 이러한 사랑을 세상 곳곳에서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제사업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면 어떤 범법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죄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법(不法)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불의(不義) 곧 의롭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요한일서 5장 17절에 “모든 불의가 죄로되”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불신(不信) 곧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요한복음 16잘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의심(疑心) 곧 의심하면서 행하는 것이 죄입니다. 로마서 14장 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불선(不善) 곧 선을 행치 않는 것이 죄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따르면 어떤 행위 뿐 아니라 어떤 상태도 죄가 됩니다. 사람들이 부지중이든 고의적이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 선을 행해야 할 것을 알면서 선을 행치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죄로 여기지 않는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죄로 여기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것저것을 죄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연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몸이 좋지 않아 동네 작은 병원에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종합병원으로 갔습니다. 진단 결과 심각한 질병이 발견되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초기라 치료를 받아 완치될 수 있었다면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기독교가 죄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기독교가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첫째, 죄는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켰습니다.
이사야 59장 2절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라고 말합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은 죄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고 말합니다.
식물을 뿌리에서 잘라내면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은 결국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으로 죽음만 온 것은 아닙니다. 부가적으로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과 질병과 노화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예레미야 2장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면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흔히 사람들은 4대 성인으로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 네 분 꼽습니다. 네 분 다 인류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훌륭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 이 분들은 우리가 존경할만한 성인임에는 틀림없으나, 우리의 구주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분들 누구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죄의 결과인 죽음에 굴복하여 자신도 구원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7절과 8절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2001년 1월 26일, 일본에 유학 중인 27살된 이수현(李秀賢.27)씨가 도쿄(東京)시내 전철역에서 술에 취해 철로에 추락한 일본인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37)씨를 구하기 위해 철로로 뛰어들었다가 전철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 그를 사람들은 의인이라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간혹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범죄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과연 사랑하실까 의심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2장 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가 많을수록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AWR, 2004년 4월 5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