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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11:08

화평하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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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

 

지난 연초(1.28)에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에서는 ‘2018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90%)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52.4%문재인 정부 내에서 갈등이 더 늘었다고 지적했다. 2017년에 갈등이 늘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22.9%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부정적 의견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반면에 이번 정부에서 갈등이 줄었다는 답변은 201729.9%에서 201812.3%로 급감했다.

정부의 갈등해소 노력에 대하여는 정부는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응답이 52.9%노력하고 있지 않다’(47.1%)는 응답보다 근소하게(5.8%) 앞질렀다. 2017년에 두 응답 간 차이가 46.8%포인트나 되었던 것에 비교하면, 정부의 갈등관리 노력에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5월에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사회문제와 사회통합보고서에도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이 매우 심하다’ 8.5%, ‘대체로 심하다’ 71.8% 80.3%가 사회갈등이 심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별로 심하지 않다17.5%, ‘전혀 심하지 않다는 응답은 0.8%에 불과했다.

 

갈등의 어원

갈등(葛藤)()’은 칡을, ‘()은 등나무를 의미한다.

칡은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식물이다. 매우 빨리 자라서 한 계절에 18까지 자라기도 한다. 자주색 꽃과 뿌리는 한방에서 약으로 사용하고, 뿌리에서 얻은 녹말로 과자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덩굴 줄기는 밧줄이나 삼태기, 바구니 등을 만들기도 했다. 칡뿌리 생즙은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나무는 덩굴성으로 10m이상 자란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휴게소 조경소재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대개 5월이 되면 30~40의 연보라색 꽃이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려 장관을 이루고 짙은 향기를 낸다. 등나무 새순은 등채(藤菜), 꽃은 등화채(藤花菜)라고 하는데,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약술을 담아 먹는다. 잎은 염료로도 쓰이며 줄기는 질기고 탄력이 있어 바구니, 의자 등 가구를 만드는 소재로 쓰인다.

갈등2.jpg

이렇게 칡과 등은 둘 다 유용성이 있는 식물이다. 그리고 둘 다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 그런데 덩굴식물은 감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나팔꽃은 항상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지만, 인동은 항상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런데 칡은 반드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반면, 등나무는 반대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갈등3.jpg

따라서 서로 의견이 달라 충돌할 때 갈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갈등을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또는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하였을 때, 선택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형별로 본 한국사회의 갈등

앞에 소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의 유형별 갈등을 보면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갈등(85.2%)이 가장 높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81.9%),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81.7%),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간의 갈등(79.8%) 순으로 나타났다.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갈등은 201480%에서 201679.5%로 줄었다가 2017년 조사에서 85.2%로 큰 폭으로 올라갔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이념갈등을 나타내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걸핏하면 진보냐, 보수냐”, 혹은 좌냐, 우냐, 중도냐는 이념적 추궁을 한다. “좌빨, 친북, 수구, 꼴통등 낙인과 증오의 어휘가 난무한다. 세계는 이미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념적 순수주의가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2016년말부터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시위 그리고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을 거치면서 이념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풀이했다.

이념갈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건전한 이념갈등은 정치발전의 계기로 작동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갈등은 서로 생사를 건 투쟁으로 비화되어 국가의 장래를 생각할 때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한 경제적 갈등도 80% 내외를 넘나든다. 가진 자는 나눌 줄 모르고, 갖지 못한 자는 나눠 갖자고 아우성이다.

대신 이전에 극명하게 나타났던 지역 간의 갈등은 57.8%로 다소 감소되었다. 개발주의자와 환경보호주의자 간의 갈등(62.9%), 고령자와 젊은이 간의 세대갈등(58.1%), 주택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갈등(52.7%), 다문화 갈등(49.9%) 등은 상대적으로 심각성이 덜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노사관계와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적 갈등문제는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따르고,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커지는 추세를 고려할 때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면서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제도적으로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갈등과 교회의 역할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개혁가인 시드니·베아트리스 웹(Sidney·Beatrice Webb) 부부는 현대 복지국가 형성의 토대를 놓은 사람이다. 그들은 1896국민최저수준(National Minimum)’이란 유명한 원칙을 처음으로 천명했다. 국가가 현직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구미(歐美)의 노동조합법, 근로자 복지,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 은퇴, 보험 등도 이들에 의해 탄생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아트리스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1890년이었던가? 나는 일기장에 인간의 타고난 선과 평화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라고 썼다. 35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지만, 인간내면의 악한 충동과 본능은 영원하다. 아무리 사회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부와 권력에 끌리는 마음의 변화는 요원하다.”

그리고 말년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악한 충동을 제어하지 않는 한, 지식이나 과학, 복지는 아무리 쌓여도 소용없다. 인간은 결코 선하지도 평화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산상설교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5:9)이라고 가르치셨다. 교회는 단순히 화평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하게 하는 자’(peacemaker)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현대 사회적 갈등을 치료할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고 권고한다.

성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읽으며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해 보자.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 주여,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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