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범죄
가정의 달이었던 지난 5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50), 아내(46), 고등학생 딸(18) 등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을 처음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건 중학생 아들(15)이었다.
아들에 따르면 사건 전날이 휴일이라 누나와 함께 집에 있었고 부모는 오후 4시께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부모와 누나가 한 방에 모여 매우 어려운 집안 형편을 이야기 하며 서로 껴안고 울었다고 한다.
아들은 저녁에 잠들었다가 밤 11시경 일어나 사건 당일 새벽 4시까지 학교 과제를 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깬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깨우지 않는 것이 이상해 집안을 살피던 중 누나의 방에서 참상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부검 결과 아버지의 시신에서 자해 전 망설인 흔적인 ‘주저흔’이, 딸에게서는 흉기를 막으려 할 때 생기는 ‘방어흔’이 확인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주변 진술 등을 종합할 때 생활고에 시달리던 남편이 아내와 딸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존·비속범죄의 증가
지난 5월에 수원에서는 아들(26)에 의해 살해돼 5개월이나 화장실에 방치된 아버지(53)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들 부자는 둘 다 무직상태로 작은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지난 해 12월 중순, 부자 간에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이 벌어지자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한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956건이던 존속(부모 이상의 항렬에 속하는 친족) 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2017년에는 1천962건으로 5년 사이 2배가량 증가했다. 2017년 발생한 존속범죄를 유형별로 보면 존속폭행이 1천322건으로 전체의 67.4%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존속상해(424건), 존속협박(195건), 존속 체포·감금(21건) 등 순이었다. 이중 존속살해는 한 달에 무려 4.5건이나 발생하고 있는데, 살인사건에서 존속 살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영국과 미국보다 4배나 높다고 한다.
비속(자녀 이하의 항렬에 속하는 친족) 범죄도 문제다. 일곱 살 친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40대 엄마, 여중생 딸을 살해한 뒤 미라 상태로 유기한 목사 부부, 초등학생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한 부부 등 비속살해 사건이 매년 30~40건씩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행 형법은 존속살해의 경우엔 사형 또는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반면 자녀나 손자녀 등을 살해하는 비속살해는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일반 살인죄와 처벌이 동일하다.
법만 그런 게 아니다. 앞의 사례와 같이 생활고를 비관한 가장이 아내와 자녀를 죽이고 자살한 경우, 대부분 이를 살인이 아니라 동반자살이라는 관점에서 보도한다. 우리 사회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의 영향으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대한 폭력이나 학대에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가족범죄의 원인과 대책
가족범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가족관계 내에 잠재된 갈등, 취약한 환경 등이 가정 범죄를 일으키는 기폭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997~2006년 사이에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 가해자 중 83.9%는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고,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가해자도 44.4%로 절반에 가까웠다.
지난 2000년 5월 21일, 한국 역사상 최초의 부모 토막살해 사건이 발생해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초기 반응은 반인륜적인 사건에 개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폭력, 집단 따돌림, 각종 미디어 폭력 등 이 사건의 총체적 배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사건 직후 가해자의 형이 “동생을 이해한다.”고 말한 것은 이 사건의 동기가 부모의 학대에 의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어머니는 명문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촉망받는 엘리트 군 장교 남편을 만나 ‘권력의 꿈’을 이루고 싶었지만, 남편이 대령 진급에 실패하면서 중령으로 예편하게 되자 욕구 불만과 좌절, 분노가 당사자인 남편보다 그를 닮은 작은아들에게로 투사되어 나타났다. 초등학교 때 운동화 끈을 못 묶는다고 때리고,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던지고, 키가 작아 사회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등의 모욕을 주었다.
아버지는 맏아들만 편애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나 자신 역시 큰 아들에게는 관대하고 둘째 아들인 가해자를 무시하고 미워했다. “굼벵이 같은 자식”, “너 같은 자식은 필요없다. 나가 죽어라”는 식의 상처주는 말을 주저없이 했다.
극심한 부모의 불화와 학대 속에 자란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가슴속에 분노와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작은 아들은 학교에서나 군대에서도 왕따를 당해 뒤틀리고 억눌린 감정이 결국 존속살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가족범죄가 증가하는 다른 이유 중 하나로 자녀양육기간이 길다는 것도 꼽는다. 20-34세 성인 중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에게 의존하는 소위 ‘캥거루족’의 비율이 56.8%나 된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더라도 월평균 소득 100만원 이하의 청년층은 81.9%가 캥거루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캥거루족이 겪는 장기 취업과정은 정신건강에 해로워 한국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고, 부모의 간섭과 갈등이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가족 간의 갈등이나 취약한 환경이 중대범죄로 발전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적극적인 가족 상담 또는 경찰 의뢰를 통한 예방적인 조치, 보호시설 등을 마련하고 이를 쉽게 이용하도록 계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모세의 율법에는 ‘살인자’와 ‘부모를 폭행하는 자’를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한다(출 21:12, 15).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도 “반드시 죽이라”(17절)고 지시한다. 부모를 저주하는 죄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와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이다(레 24:16).
이것은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한다.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이런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 6)고 경고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조상인 부조들의 참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한 것이지만, 마지막 때에 실제 부모와 자녀에게 적용해도 틀림이 없다. 부모의 권위가 멸시받는 사회나 자녀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안전할 수 없고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9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