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대부분 대책보다 빠르다
“연탄가스다! 빨리 밖으로 나가라”
고등학교 시절, 난 기숙사 생활을 했다. 내 방은 3호실이었고 고등학교 2학년인 나와 1학년 후배, 중학교 1학년 막내 셋이 함께 살았다. 밤 10시 취침을 하고 몇 시간이나 잤을까? 잠결에 막내의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기도 했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감은채 등을 토닥여 주며 재우려 했지만 그치지 않았다.
“왜? 엄마가 보고 싶어?” 내가 묻자 “아니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하고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 아이 머리를 짚어보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갑자기 핑 돌면서 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순간 연탄가스 중독임을 알아챘다. 당시 연탄가스 사고는 흔한 일이었다. 밖으로 나가야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후배를 발로 차며 “우리 연탄가스 먹었다. 빨리 밖으로 나가라!” 하고 소리쳤지만 후배의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문을 향해 기어갔다. 방문을 여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한 구토가 느껴졌다. 그러나 두 아이를 살리려면 사람들을 깨워 도움을 청해야했다. 1호실인 도방장실 문 앞에 비상벨이 있는 것이 생각났다. 2호실만 지나가면 되는데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어가 간신히 비상벨을 누르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사감 선생님과 기숙사 동료들이 우리 셋을 나란히 눕혀놓고 근심스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때? 정신이 드나?” 사감 선생님이 물었다. 심한 두통과 귀울림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자꾸 토할 것 같았다. 사감 선생님은 “이걸 먹으면 좀 나아질거다” 하시며 김칫국물을 먹여 주셨다. 온종일 두통과 귀울림에 시달렸지만, 우리 셋 다 큰 탈없이 회복되었다.
강릉 펜션 중독 사고
작년 연말,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서 잠을 자던 고교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이들은 대입 수능시험을 마치고 체험학습을 떠나 이 펜션에 투숙했다. 사고는 펜션 외부에 설치된 가스보일러의 연통이 분리되어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어 일어났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보일러와 연통 사이에 접착물인 내열 실리콘 처리가 안 돼 있었는데도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적합 판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일산화탄소 경보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부실시공, 부실점검 및 부실관리가 참사의 원인이었다.
일산화탄소(CO) 중독
겨울철 가스보일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해마다 계속되어 왔다. 2017년 12월에도 대구 동구 한 빌라에서 일가족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발견될 당시 가스보일러 배관이 몸통에서 이탈되어 있었고, 실내 일산화탄소 농도는 4059ppm이었다고 한다. 2015년 12월에도 전북 군산시에서 같은 사고로 아파트에 살던 2명이 숨졌다. 2014년 12월에는 경남 의령군의 한 빌라에서 같은 사고로 일가족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일산화탄소는 상온에서 무색, 무취, 무미의 기체로 존재한다. 취사나 난방용 가스, 연탄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연료의 연소에 의해 생기기도 하고, 자동차 배기가스, 제철, 도시가스 제조과정에서도 생긴다.
일산화탄소는 폐로 들어가면 산소보다 250배 더 빠르게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산소 보급을 가로막아 ‘혈액량 감소 쇼크’를 일으킨다.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소량으로 방출되는 일산화탄소라도 오랫동안 마시게 되면 영구적인 두뇌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증상은 두통, 졸음, 무기력증, 현기증, 구역질, 실신 등이 있으며, 심할 경우에는 맥박 약화, 혼수상태, 호흡 정지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만성 중독일 경우에는 기억 장애, 운동 장애 등의 신경 증상이 동반된다고 한다.
강릉펜션 사고를 계기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서울 시내 식당 주방과 흡연실, 보일러실, 지하철역, 자동차 배기구 등 30여 곳의 일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다.
장어구이집 숯불화로 앞은 997ppm, 연탄불고기집 화덕 앞은 1000ppm이었다. 치사량 수준이다. 돼지갈비집 주방 가스레인지 앞은 180. 담배 연기는 141, 자동차 배기구 75~104, 보일러 연통 43, 가스버너 앞 23ppm이었다. 다행히 손님이 식사하는 홀은 정상 수치인 20ppm 아래로 떨어졌다. 자동차 실내도 8, 지하 주차장 4~5, 길거리나 지하철역은 3~5였다. 특히 가정용 가스레인지에서는 57ppm이 검출됐다. 인체에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장시간 노출된다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 반드시 후드를 틀어서 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난에 대한 반응
강릉 펜션 사고 여파로 주변 숙박업소를 예약한 손님들이 ‘보일러 점검을 잘 받았는지, 일산화탄소는 안 나오는지’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특히 고교생 단체 숙박은 대부분 취소됐다. 또한 일산화탄소 측정기 구매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방정부에 긴급 펜션 안전 실태 점검을 지시했다. 농식품부는 전국 농어촌 민박과 농촌관광시설에 대해 가스 누출 점검과 환기 상태, 보일러 배기관 이음매 연결 상태 등을 점검하고,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하였다. 교육부는 개인체험학습 자제령을 내렸다.
문제는 같은 재난들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당시 19세)씨가 열차와 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그의 가방에서 컵라면이 발견되면서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폭발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계약직 노동자인 김모(24)씨가 컨베이어 벨트 밑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가방에서는 고장 난 손전등, 검정 탄가루에 얼룩덜룩해진 수첩, 김씨의 작업복 그리고 컵라면 세 개와 과자 한 봉지가 나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에도 사회적 여론들이 비등하고 관련기관에서는 여러 대책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재난은 대부분 우리의 대책보다 빠르게 닥친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전 9:12)고 하였다.
세상 끝까지 재난은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작은 재난들은 다가올 큰 재난에 대한 경고이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또 일상으로 돌아가고 사건은 잊혀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마지막 날을 맞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9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