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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5:46

회자정리(會者定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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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會者定離)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을 맞이했다. 나무들은 한 해 동안 입었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세월의 덧없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작이 있으면 당연히 끝이 있기 마련이다. 석가모니는 자기 죽음을 슬퍼하는 수제자 아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난이여, 슬퍼하지 말라.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니, 사랑하는 자나 좋아하는 자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평소에 말하지 않았더냐? 비록 내가 한 겁(, 무한히 긴 시간) 동안이나 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 바탕이 그런 것이니라.”

산 것은 반드시 죽고(生者必滅),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會者定離)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우스(Uz) 사람 욥(Job)도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말하기를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욥기 147-10)라고 탄식했다.

그래서 조병화 시인은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라는 시에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 집 / ,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라고 읊었다.

 

하벨 하발림(Habel habalim)

히브리어 하벨 하발림은 헛되고 헛되다는 뜻이다. 솔로몬은 그의 책 전도서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벨 하발림은 하늘들의 하늘노래들 중의 노래와 같이 헛됨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이다.

헛되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헤벨(hebel)’은 본래 혹은 증기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헛되고 무익한 우상들과 또한 그것들을 경배하는 것에 대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솔로몬은 헤벨의 범위를 더 확대한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14)

모든 것이 헛되다. 이것은 우리 인생을 포함하여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애착을 갖는 모든 것이 토해내는 숨이나 증발하여 사라지는 증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탄식 섞인 고백 앞에 반론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자필반(去者必返)도 있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去者必返). 하지만 실제 떠난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자필반은 떠난 사람이 꼭 돌아온다는 의미보다 만남과 헤어짐이 덧없는 일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일체무상(一切無常, 모든 것은 덧없다)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생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귀중한 물건이 언제나 곁에 있기를 바라고 변치 않기를 기대한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살아도 막상 사랑하는 사람이 변심하거나 죽거나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리면 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만해(萬海) 한용운도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

 

끝이 또 하나의 시작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모든 끝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Every story has an end, but in life, every ending is just a new beginning.”

영화 업타운 걸(Uptown Girls, 2003)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브리타니 머피(Brittany Murphy)가 한 명대사이다.

하나의 인연이 다하면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법이다. 하루가 끝나면 다음 날이 시작되고, 한 해가 끝나면 다시 새해가 시작된다. 시편 기자는 세상 종말의 끝에서 영원을 본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편 10226-27)

 만남과헤어짐2.jpg

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이제 마지막 장을 남겨 놓고 있다. 우리는 곧 12월 달력을 내리고, 새해 1월 달력을 걸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 우리는 달력을 바꾸듯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미리 보고 이렇게 말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요한계시록 211, 4)

그래서 초기 한 기독교인 저술가는 하나님은 언제나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신다.”고 말했다. 끝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가 된다. 솔로몬은 헛됨이란 맨살을 직면하며 절망의 끝에서 고뇌했다. 그러기에 그는 비로소 헛된 것에서 눈을 돌려 참된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전도서를 이렇게 끝맺는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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