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바벨탑의 빛과 그림자
지난 2013년에 개봉된 김성수 감독의 “감기”라는 영화가 있다. 시놉시스(Synopsys)는 이렇다. 평택항으로 밀입국하려던 동남아인들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죽은 채 발견된다. 변종 조류독감 때문이었다. 치사율이 50%나 되는 변종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분당 전역으로 확산된다. 질병관리본부는 분당 전역을 격리 조치한다. 원인도 모른 채 격리된 40만 명의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바이러스 전파를 우려한 미국은 발포를 명령한다. 한국 대통령이 거절하자 미군은 전투기를 발진시키고, 한국 대통령은 격추를 명령한다.
분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대로 발표하자고 하자, 총리는 “인간이란 게 위기상황에서는 절대 침착해질 수 없다”며 “오히려 발표를 보고 난리 치면 그게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며 일축한다.
인포데믹스(Infodemics)라는 단어가 있다. 2003년 5월, 미국 컨설팅 업체인 인털리브리지의 데이비드 로스코프(David Rothkopf) 회장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s)의 합성어로 부정확한 정보가 확산되면서 발생하는 각종 부작용을 가리킨다. 따라서 인포데믹스를 정보전염병 혹은 21세기의 흑사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고대 바벨탑의 기원
성경에 의하면 노아홍수(Noah's Flood) 후 인류는 노아의 세 아들 곧 셈(Shem), 함(Ham), 야벳(Japheth)으로부터 종족들이 나누어지기 시작했으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유프라테스 강변의 시날(Shinar, 바벨론) 평지에 도착했다. 함(Ham)의 후예 중 첫 용사요, 뛰어난 사냥꾼인 니므롯(Nimrod)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세기 11장 4절)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었다. 노아 홍수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홍수로 땅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창세기 9장 11절)라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바벨탑은 불신의 탑이었다. 그들은 홍수에 대비하여 높은 탑을 쌓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남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세기 9장 1, 7절)고 하셨다.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바벨탑 건설자들은 도시를 만들어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 정부를 세우고자 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자 탑을 쌓는 공사는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원근 각처로 흩어졌다. 바로 이것이 현재 약 3,000개를 헤아리는, 매우 다양한 언어들과 방언들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기원이다.
바벨탑을 재건하려는 시도들
악(惡)은 선(善)보다 전파 속도가 빠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악에 더 잘 끌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흩어져 살게 하심으로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죄악의 잔이 차는 것을 막고자 하셨다.
그러나 인류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작정(作定)을 거슬러 종족 간, 민족 간, 나라 간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고대 서양에 전례가 없던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 19세기 초엽, “한 황제, 한 법전, 한 의회, 한 화폐”로 통합된 대제국을 구상했던 나폴레옹(Napoleon), 1차 대전을 치룬 독일의 빌헬름 2세(Wilhelm II), 2차 대전의 장본인인 히틀러(Hitler),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제국주의, 철의 장막의 스탈린(Stalin), 죽의 장막의 모택동, 유럽합중국의 건설을 제안했던 처칠(Churchill)의 노력으로 1993년 유럽연합(EU)이 출범했지만,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통합의 꿈은 멀어졌다.
수평적 바벨탑
1969년 알파넷(ARPANET)으로 시작된 인터넷망은 전 세계를 ‘지구촌’(Global Village)으로 만들었다. 아직 언어장벽을 완전히 넘지 못했지만, 구글(Google) 번역기가 그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어순 등 문법적 문제인지는 모르나 영어 사이트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일본 사이트들은 마치 국내 사이트를 보는 것처럼 번역이 자연스럽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발달도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SNS는 개방형(불특정 다수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과 폐쇄형(지인들 위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미니홈피, 밴드, 카카오스토리 등)이 있다.
2016년 1월 현재, 전세계 74억 인구 중, 인터넷 사용자수는 약 34억 명, SNS(메신저 포함) 사용자수는 약 23억 명, 모바일 사용자수는 약 38억 명, 모바일 소셜 미디어 사용자(SNS+메신저)수는 약 20억에 달한다.
현대 인류가 수평적으로 쌓아올린 현대 바벨탑은 신속하고 편리한 정보의 습득, 정보의 민주화, 참여 민주주의 실현, 투명한 사회, 지역공동체 형성, 삶의 질 향상 등에 기여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역기능도 있다. 불건전 정보 유통, 허위정보 유포, 사생활 침해, 사이버 폭력, 지적 재산권 침해, 언어폭력 및 훼손, 불건전한 교제, 사이버중독(게임 및 채팅 중독 등), 소득에 따른 계층 간 정보격차의 확대, 국가 간 경계 약화로 인한 무한 경쟁 체제 돌입, 형식적·수단적인 인간관계의 증가 등 많은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죄악은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짐승의 수준으로 타락하고 있다. 언젠가 죄악의 잔이 찰 때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창세기 11장 5절)실 것이다. 안방에서 각종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지금은 가려서 보고 들어야 할 때이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