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를 뿌리는 사람들

by 로뎀 posted May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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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뿌리는 사람들

 

한 농부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 그런데 그 농부의 원수가 밤중에 몰래 와서 밀 사이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자랄 때는 밀과 가라지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다. 밀이 다 자라 낟알이 익을 때 비로소 까만 가라지가 수없이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들이 와서 말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디서 이런 가라지가 나왔을까요?”

주인이 대답했다.

원수가 그랬구나.”

저희가 가서 가라지를 다 뽑아 버릴까요?”

아니다. 가라지를 뽑을 때에 밀도 함께 뽑힐 수 있다.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놔 두어라. 추수할 때,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 묶어서 불에 태우고, 밀은 거두어 곳간에 쌓으라고 하겠다.”(마태복음 1324-30)

가버나움과 막달라 사이의 갈릴리 호수 어느 해변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이다.

 

가라지의 정체

우리말 성경에는 가라지로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tare’(독보리, KJV), ‘weed’(잡초, NIV) 등으로 번역되었다. 헬라어 원문에는 지자니아(zizania)’라고 되어 있는데 롤리움 테물렌툼(Lolium temulentum)’ 즉 화본과식물인 수염 난 ()보리을 가리킨다. 팔레스타인에 흔한 이 식물은 키가 약 60센티미터까지 자란다. 싹이 나서 자랄 때는 잎과 줄기가 밀이나 보리와 너무 같아서 구별할 수가 없다. 다 자라서 독보리의 씨가 검게 되어서야 곡식과 구별이 된다. 독보리 씨 자체는 독성이 없지만, ‘테므렌(temulen)’이라는 곰팡이에 감염되면 독성을 일으켜 먹으면 심한 멀미와 설사, 경련, 때로는 사망까지 초래한다. 독보리가 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더라도 맛이 쓰기 때문에 밀에 섞이면 밀가루를 맛이 나빠진다.

 

재 뿌리고 초치는 사람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에 잠시 머물 때, 주변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녔다. 당시 남성사중창이 한창 인기여서 몇 청년들과 의기투합을 했다. 남성사중창은 하이테너, 세컨테너, 바리톤, 베이스로 이루어지지만, 그 파트에 어울리는 음색을 갖춘 사람도 없었고, 자기 음도 제대로 못내 곧잘 멜로디를 따라가 단음 합창이 되곤 했다. 한 달여를 연습한 끝에, 드디어 예배시간에 특창을 부르게 되었다. 몇 군데 불안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노래를 마쳤다. 성도들은 우렁찬 아멘으로 격려해 주었다. 예배가 마치자 한 분이 다가와 말했다.

... 수고는 했어. 그런데 세컨테너가 영 음색이 아니고, 베이스는 음량이 너무 작아.”

이 말에 우리는 풀이 죽어버렸고, 그날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무슨 일에 꼭 재를 뿌리고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방송, 영화, 소설 등에서 스포일러(spoiler, 영화 등의 결말이나 반전을 공개하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스포일러가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1995유주얼 서스펙트가 개봉되었을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그때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이 창문을 열고 범인은 0000이다라고 소리쳤다. 영화를 즐기려던 사람들은 결말을 알게 되어 김이 빠져버렸다. 한 관객은 스포일러에 대해 대체 무슨 심보로 남의 영화 감상을 망치는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517, 서울 강남역 인근 서초동에 위치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한 정신질환자가 무고한 여성을 살해하자 여성혐오 범죄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전국적인 추모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한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이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맙시다라는 엉뚱한 화환을 보내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온라인에서도 게시판이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등에서 시비를 걸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악플러(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

 

재를 뿌리는 심리

이러한 심리는 기본적으로 공격성이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환경이나 사건으로 내면에 상처를 받게 되면(심리적 외상), 사회를 향한 원망과 증오를 갖게 되고, 자기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무자비한 언어적 폭력을 쏟아내 복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박탈감에 의한 질투심에 기인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인기인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그들이 어떤 사건으로 도마에 오르게 되면 쌤통이다는 식의 감정 분출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에 의한 반동이 원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같은 곳에서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고, 싸움을 걸고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통제형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이 자기주장과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결로 결정해도 독재라고 폄하하고, 집단 전체를 불의의 세력으로 정의한다.

특히 이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어서 상대방이나 집단이 느끼는 고통에 둔감하다. 따라서 남의 불행 앞에서 태연스럽게 저주에 가까운 말과 글을 뱉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히브리서 1215)할 것에 대해 엄히 경계한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논쟁을 선동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며,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다.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곳간에 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