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

by 로뎀 posted May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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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정치

 

지난 해 111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여러 단체가 개최한 민중총궐기(民衆總蹶起) 집회가 서울에서 있었다. 이 시위는 현 정부의 노동정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소홀, 농민문제, 빈곤문제 등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집회에, 이전에 여러 건의 법률 위반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상균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회 후 그는 조계사로 피신했다. 경찰은 조계사에 한 위원장의 퇴거를 요청했지만, 조계사 화쟁위원회는 강제퇴거를 거부하고, 한 위원장의 자진퇴거를 기다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대통령은 수배중인 민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 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이같은 불법 폭력 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 시키려는 의도라며 강력히 대처할 것을 지시했다.

결국 경찰은 129일 오후 4시까지 자진출석하지 않으면 조계사 내에 경찰 병력을 투입해 검거하겠다고 발표했다. 조계사 총무원장의 중재로 하루 연기된 끝에 한 위원장은 1210일 조계사에서 나와 경찰에 체포되었다.

 

종교시설 은신처 논란

한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 사건으로 종교시설의 은신처 논란이 다시 제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종교시설은 시국사범이나 수배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이른바 현대판 소도(蘇塗, 삼한시대 죄인이 피하면 잡아갈 수 없는 특별구역)’ 역할을 해왔다.

그 중 서울 명동성당이 대표적이었다. 명동성당은 1980년대 재야노동단체에게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웠다. 2009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 때도 수배자 3명이 약 4개월간 명동성당에 피신한 적이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계사가 피신처가 되었다. 2008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벌이던 농성단이 120일 넘게 조계사에 머물렀고, 201312월 철도파업을 주도한 철도노조 지도부 역시 20여일 간 조계사에 피신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종교계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명동성당은 2000년을 전후해 더 이상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20023월에는 조계사 법당에서 농성 중이던 발전노조원들을 조계사 측의 요청에 의해 경찰이 진입하여 체포하였다.

 

교회와 정치 관계의 원칙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옳은가? 이 질문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가복음 1217)는 예수님의 말씀이 답이 될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과 정부의 관계를 결정짓는 근본원칙을 밝히셨다. 예수께서는 정부의 정당한 주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동시에 하나님의 것도 경시하지 않았다. , 교회와 정부와의 관계는 이것이냐 혹은 저것이냐는 문제가 아니라 양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정교일치 또는 정교결합(政敎結合)이 오랜 기간 행해졌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갖가지 폐해를 경험했다. 따라서 계몽주의가 파급되고 특히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시작했고, 근대 이후 정교분리 원칙이 보편화 되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정치가 종교영역을, 종교가 정치영역을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도 제20조 제1항에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되어 있으며, 2항에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정하고 있다.

 

대립이 아닌 보완적인 정교(政敎)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와 정치를 엄밀히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분리는 격리와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정교격리란 결코 가능하지 않다. 현실적으로 국가가 종교 제도에 대한 정당한 법적 간섭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교분리란 서로 간의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그 영역은 피차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서도 정치는 종교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종교는 정치가 할 수 없는 것을 함으로써 피차 대립이 아니라 보완하며 협력하는 관계를 모색할 때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한복음 1833, 36)고 답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예수님의 나라가 아닌 이 세상 나라의 한 편에 서서 상대를 증오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기독교인이 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그렇다라고 할 때만 하고, 아닐 때는 아니오라고 말해라. ‘아니오이상의 말은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복음 537, 쉬운 성경)라고 하셨다. 기독교인이 사적으로 정치와 사회문제에 자기 의사를 표명하고 투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지만, 어느 한 편에 치우며 상대에게 증오심을 나타내는 것은 악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정치참여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고린도후서 518)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 요한계시록 17장은 붉은 빛 짐승을 탄 한 여자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여자는 종교세력을, 붉은 빛 짐승은 정치세력을 의미한다. 이 여인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요한계시록 176). 이것은 말세에 종교가 자신들의 신조를 강요하기 위해 국가 위에 군림할 것을 의미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무시되고, 정부와 교회가 연합할 것이며, 그 결과 종교적 자유가 박탈되고 의견을 달리하는 소수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말은 신앙의 자유와 양심을 지킨 진실한 사람들이 승리한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요한계시록 1714)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