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와 임계전이
지난 5월 4일, 바레인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던 A씨(68세. 남)가 카타르를 거쳐 귀국하였다. 당시는 아무 증상이 없었으나 일주일 후인 11일부터 고열과 기침 등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사는 안산의 한 의원에 세 차례 다녀왔지만 차도가 없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여기서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17일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자리가 없어서 근처 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18일에 서울삼성병원에 입원한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중동에 다녀온 사실을 말했고, 20일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국 그가 다녀간 병원을 통해 환자와 방문객, 의료진이 무더기로 감염되면서 국내 메르스 사태가 시작되었다.
메르스란 무엇인가
메르스(MERS)란 중동 호흡기 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영어약자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다.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왕관같이 생겼다고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 약자로 CoV)라고 부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알려져 있다. 대개 미미한 감기 증상만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바이러스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2년에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에서 낙타에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인체에 감염되면서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사망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메르스를 경고하긴 했지만 전 세계적인 유행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발병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이번 사태로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만 유난스런 이유
메르스는 중동국가들 외에는 대개 산발적인 감염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례적으로 확산 속도도 빠르고 무더기 감염 형태를 나타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 변이를 의심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우리나라 국민의 유전적 특성과 관련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으나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들은 대부분 내구성과 생존성이 약해서 체외에서 하루도 버티지 못하며, 손만 잘 씻어도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렇게 빠르게 확산되었는가? 그동안 보도된 내용을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첫 환자가 의료진에게 메르스 발병지역을 다녀온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 환자는 4병원을 전전하였는데, 3병원 의료진에게 자신이 메르스 최다발병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2위 발병국 아랍에미리트, 3위 발병국인 카타르를 다녀온 사실은 말하지 않고, 미(未)발병국인 바레인을 다녀온 사실만 알림으로 의료진이 대처할 수가 없었다.
둘째는 정부와 보건당국의 미숙한 대응이다. 5월 18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이 질병관리본부에 첫 환자의 확진 검사를 요청하였지만, 바레인이 메르스 발병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호흡기 질환 검사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결국 이 환자는 20일에서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가 입원했던 병원들에서 대규모 감염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때라도 정부는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밝혀 전염을 차단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메르스 환자들이 방문했던 병원 24곳을 모두 밝힌 것은 첫 환자가 발생한 후 2주 반이 지난 뒤였다.
셋째는 환자들의 태도이다. 한 환자는 5월 16일에 환자와 접촉했고, 19일에 증상이 나타났지만 출근 등 일상생활을 계속했고, 22일 37.7도의 고열로 병원을 찾았을 때도 자신이 첫 번째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사실과 가족 중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밝히지 않았다. 계속 고열로 고생하다 25일에서야 병원 의료진에게 가족의 메르스 확진 사실을 말했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6일 중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이 때문에 확진 판정 후 그가 방문한 의료기관의 의료진, 직장 동료, 중국행 항공기에서 주변에 앉았던 승객과 승무원 등 200여명을 찾아 나서야 했다. 또 메르스 의심 환자가 병원 후송을 거절해 경찰과 보건소 직원이 강제로 병원에 이송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예들은 개인의 자유는 신장되었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임계전이(Critical Transition)
임계전이란 어떤 상황이 별 조짐이 없이 진행되다가 임계점에 이르러 갑자기 파국을 맞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1997년에 겪었던 IMF 구제금융사건이라든지, 미국에서 2008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 확산은 임계전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임계전이는 파국 직전까지 별 조짐을 드러내지 않아 예측이 어렵고, 파국 이후에는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말세에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누가복음 21장 11절)고 경고하셨다. 징조는 충분히 주어졌다. 문제는 우리가 위기를 느끼고 대처하는데 무감각해지고 나태해져 있다는데 있다.
사도 바울은 언젠가 인류의 생존에 임계전이가 이르러 올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한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