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쏘았는가

by 로뎀 posted May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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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쏘았는가

 

지난 513, 한 예비군이 사격 훈련 도중 갑자기 동료 예비군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1사로에 배치된 최모 씨(24)는 영점사격 중 한 발을 쏜 뒤, 갑자기 일어나 동료 예비군들을 향해 총을 쐈고, 총에 맞은 4명 중 3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총을 난사한 뒤 스스로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씨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였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입대하여 경기도 연천의 한 부대에서 복무할 당시 중점관리대상인 B급 관심병사였다고 한다. 전역한 후에는 특별한 직업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또 웃통을 벗고 다닌다든가 고함을 질러대어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자살 비행

지난 324일에는 독일 저먼윙스 9525편의 부조종사 안드레아스 루비츠(28)가 고의로 여객기를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악지대에 추락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142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모두 희생되었다. 루비츠는 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 조종석 문을 잠그고 비행기를 하강시켰다. 독일 수사 당국에 의하면, 그는 심각한 정신질환과 시력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비행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얼마 전 7년 동안 교제하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묻지마 살인의 원인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동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외상후 울분장애(PTED: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이다. 이와 비슷한 질환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다. 둘 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공포심과 우울증으로 화가 나는 것은 같다. 그런데 화를 내는 이유가 전연 다르다. PTSD는 전쟁 혹은 천재지변처럼 화를 내는 대상이 막연하다. 그러나 PTED는 화를 내는 대상이 보다 구체화되어 있다. 이 환자들의 기본 정서에는 억울함’, ‘분노그리고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무기력감이 있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상대나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부당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수하고 싶어한다.

최씨의 유서 중에 “GOP때 다 죽여버릴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걸 기회를 놓친게 너무 아쉬운 것을 놓친게 후회 된다고 한걸 보면, 군에서 당했던 어떤 부당한 사건들에 대해 제대로 대항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오랫동안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이 도화선이 되어 엉뚱한 대상에게 울분을 터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는 좌절-공격 이론(frustration-aggression hypothesis)”이다. 과거에 겪은 좌절감, 다시 말해 과거 실패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 감정이 공격성을 증대시켜 공격 행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데 좌절하여,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자신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루비츠는 정신질환과 시력저하로 비행 자격을 박탈당할까 염려하고 있었다. 또한 여자 친구에게 언젠가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무엇인가를 하겠다. 그러면 모두가 내 이름을 알고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인간의 공격성

프로이드(Freud)는 정신분석에서 정신적 에너지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에서 표출된다고 보았다. 삶의 본능은 개체의 보존과 종족번식에 관계하는 생식본능이나 성본능이며, 이를 리비도(Libido)라 한다. 죽음의 본능은 모든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공격성은 죽음의 본능에 내포되어 있는 자기 파괴적 본능이 외부의 다른 대상에게 돌려진 것이다.

테리 오를릭(Terry Orlick)은 공격 형태를 우연적 공격(비의도적인 공격), 표현적 공격(자기 지향적 공격), 도구적 공격(목표지향적 공격). 파괴적 공격(의도적인 공격), 방어적 공격(반응적 공격) 등으로 구분했다.

사람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은 도구적인 경우(강도는 돈을 목적으로 공격한다), 파괴적인 경우(루비츠는 자신의 좌절감으로 인한 분노로 자살 비행을 했다), 방어적인 경우(최씨는 과거 성장과정이나 군생활에서 겪은 억울함, 분노, 무력감으로 묻지마 살인을 했다) 등이 대부분이다.

 

인간이 죽음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타인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공격성은 전적으로 본능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곽임원(郭任遠, Zing-Yang Kuo, 1898~1970, 중국 심리학자)은 새끼 고양이와 새끼 쥐를 한 우리에서 길러, 고양이가 쥐를 공격하는 것은 본능보다 학습에 더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학습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대중 매체, 특히 TV와 인터넷이다.

똑같은 외부자극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공격적으로 반응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즉 환경보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분노나 좌절은 억압하거나 회피하면 더 극단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처벌도 폭력을 감소시키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폭력은 인간의 공격성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대안이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기 정화라고 말하고, “무살생·비폭력은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최상의 법칙이다. 이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폭력을 믿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