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새로운 세상의 모형
을미년 새해 첫 달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연하장에 의례 쓰이는 문구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다. 해석하면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그냥 축하하지 않고 ‘조심스럽게’를 의미하는 ‘삼갈 근(謹)’자를 첨부하는가? 그 이유는 새해가 모든 사람에게 축하할 일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유독 싫은 사람이나, 정년퇴임을 맞게 된 사람에게는 새해가 별로 기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개인이나 가정에 알지 못하는 우환이 있는 경우에는 자칫 축하인사가 실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삼가’라는 말을 첨부하여 “그래도 새해를 기쁘게 맞이해보자”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면 오늘이나 내일이 결코 새 날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새해는 새로운 달력을 거는데 있지 않고, 새 마음을 갖는데 있다.
1월은 야누스의 달
1월을 영어로 재뉴어리(January)라고 하는데 로마 신화 야누스(Janus)에서 유래되었다. 야누스는 문(gates)을 상징하는 신이다. 야누스는 하나의 머리에 두개의 얼굴이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몽둥이, 다른 하나는 열쇠를 상징한다. 즉 1월은 묵은 것은 몽둥이로 쫓아버리고 새해를 열쇠로 여는 달이라는 뜻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역시 옛것은 보내고, 새것은 환영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상처나 고통은 사실 기억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기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과거를 놓아줄 수는 있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과거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만이 새해를 새해답게 맞을 수 있다.
“좋은 글”에 이런 글이 있다.
<새해가 되었다는 의미>
닭이 울었다고 새벽이 온 것이 아니듯
일월 일일이 되었기에 새해가 된 것은 아닙니다.
새해는 지난해를 옛것으로
규정하는 자에게만 새해가 됩니다.
옛것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옛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뒤엣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용서 할 것은 용서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뜻으로
출발하는 자에게만 새해인 것입니다.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7월(히브리명으로 티스리월) 1일을 한 해의 첫날(Rosh HaShanah)로 지킨다. 로쉬는 ‘머리’를 의미하고, 하샤나는 ‘해’를 의미한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는 “해의 머리” 즉 새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력 6월(히브리명 엘룰월) 25일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로부터 6일째인 7월 1일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로쉬 하샤나는 특별한 날이다. 특히 이 날은 성경 민수기 29장 1절의 지시대로 수양의 뿔나팔(Shofar)을 불어 이 날을 알렸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로쉬 하샤나’로부터 ‘욤 키프르’(대속죄일)까지 10일 간을 야밈 노라임(Yamim Noraim, 두려움의 날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왕좌에 앉아 각 사람의 행실이 기록된 책을 조사하시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고 대속죄일에 봉인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기간에 회개와 구제 그리고 선행을 베푼다. 왜냐하면 아직은 하나님의 심판이 번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속죄일은 하나님의 심판이 결정되고 고정되는 날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날에 25시간(24시간만 하면 되지만 실수로 시간을 범할까 하여 전후 30분을 더한다) 완전 단식을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다.
유대인들에게 새해는 단순한 새해가 아니라 이 세상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그 날에 대한 모형이다. 성경은 원형적인 야밈 노라임(두려움의 날들)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다니엘서 7장 9, 10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는 심판의 시대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 번복될 수 있는 은혜의 기간 동안 자신을 반성하면서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속죄일의 해가 저물면 다시는 번복될 수 없는 하나님의 선고가 내려지고 우리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날의 장면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장 11, 12절)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5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