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킨 것은 10가지 재앙 때문이었다. 재앙 중에는 개구리, 파리, 메뚜기, 이 등의 해충과 전염병과 독한 종기 등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국가였던 아테네가 쇠락하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주도국으로 부상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 역시 전염병과 관련되어 있다. 아테네가 이끌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끌던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30년 아테네 역병이 처음 발생하였다. 이 역병은 기원전 429년과 427년에 재발하였는데, 그 결과 당시 아테네 군인과 민간인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전력이 크게 약해진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패전하게 된다.
로마 역시 서기 165~180년에 유행한 안토니우스 역병과 251~266년에 로마를 강타한 성 키프리아누스 역병으로 사회체제가 붕괴되었고, 동서 로마의 분리와 멸망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541~750년에 유행했던 유스티아누스 역병은 콘스탄티노플을 휩쓸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라인 강 유역, 영국, 덴마크 등으로 번져나가며 유럽 인구를 반토막 냈다. 그 결과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기반한 제국시대가 끝나고 중세 봉건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은 1340년대에 약 2천5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당시 유럽의 인구의 약 30%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이후로도 흑사병은 1700년대까지 100여 차례의 전 유럽을 휩쓸면서 무려 7,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결과 영주들의 부와 권력은 축소되고, 농노들은 영지를 떠나 소작농이나 소지주, 장인 등으로 변신하면서 중세 봉건주의 경제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또한 중세의 정신적 기반이었던 기독교도 페스트 퇴치에 실패하면서 그 권위를 잃게 된다.
유럽인들의 신대륙 정복에도 천연두와 홍역, 그리고 인플루엔자 등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의 영향이 컸다. 일부에서는 유럽인들의 신대륙 개척 당시 살고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 가운데 95%는 유럽에서 건너온 전염병에 의해 죽었다는 시각도 있다. 1)
인간의 반격
전염병의 원인인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것은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Antoni van Leeuwenhoek, 1631~1723)이었다. 1796년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우두(cowpox)를 이용하여 천연두 백신을 개발하였고, 1885년에 루이 파스퇴르가 현대 과학적 기법을 이용하여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이후 디프테리아, 파상풍, 장티푸스 등 수많은 백신들이 개발되었다.
또한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죽이는 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영국 세균학자 플레밍이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942년 미국 코네리컷주 뉴헤이븐 병원에서 패혈증을 앓는 33세 여성의 치료에 성공한 후 페니실린은 기적의 항생제로 각광받게 됐다. 1950년대 초까지 페니실린은 거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전염병의 반격
그러나 병원체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페니실린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박테리아가 유전자 변이 등으로 새롭게 진화한 것이다. 페니실린보다 강력한 2세대 항생제 메티실린, 3세대 항생제 밴코마이신이 잇따라 개발됐지만 효과가 몇 년 가지 않았다. 이렇게 항생제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 박테리아를 슈퍼 버그(Super Bug) 또는 ‘슈퍼 박테리아’라고 한다.
지난 2001년 9월 6일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오늘날 누구도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1981년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즈를 필두로 광우병과 조류독감, 병원성 대장균 0-157 등 신종 전염병이 잇따라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최강의 항생제인 밴코마이신에도 죽지않는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까지 등장했다.”
지구 종말의 변수
신종 전염병의 출현은 병원체들의 생존을 위한 변이로 인한 것도 있지만, 인간 문명의 부작용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대표적이다. 현재 인간에게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없다. 인간과 동물의 접촉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에이즈(AIDS)가 있고, 초식동물인 소에게 다른 소의 고기를 먹인 결과 생겨난 광우병도 있다. 이 역시 완치가 불가능하며, 발병하면 거의 100% 사망에 이른다.
인간의 문명은 병원체를 제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원체를 세계 곳곳으로 퍼뜨릴 기회도 확산시켰다. 또한 세계적으로 늘어만 가는 거대 도시의 형성도 전염병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만일 기존의 백신이나 항생제가 듣지 않는 막강한 전염력과 살상력을 갖춘 킬러 바이러스가 갑자기 출몰할 경우 인류 전체가 대학살을 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예수께서는 종말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1)고 예언하셨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의 변동에 큰 변수가 되기도 했다. 예수의 말씀은 지구 역사의 종말에도 전염병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최낙언의 “세상을 바꾼 전염병의 역사”에서 발췌, 요약(http://seehint.com/hint.asp?md=210&no=11149)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4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