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Hate Crime)
지난 2011년 6월에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건널목에서 이모(54)씨가 회사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유모(여·32)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씨는 “집을 나간 딸과 아내가 미워 지나가던 여성을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구의동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신 뒤 집에 있던 흉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눈에 띄는 대로 사람을 해치기로 생각하고는 때마침 길을 가던 유씨를 발견, 범죄를 저질렀다. 졸지에 변을 당한 유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여성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감과 적개심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시민이 희생된 것이다.
증가하고 있는 증오범죄
“증오범죄(hate crime)”란 소수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장애자, 노인 또는 특정 종교인 등에게 이유없이 증오심을 갖고 테러를 가하는 범죄로, 기존의 전통적인 범죄와 완전히 다른 범죄유형이 아니라 기존의 범죄유형에 편견이 더해진 범죄를 가리킨다. 원한범죄가 비교적 개인적인데 비해, 증오범죄는 대개 자신과 다른 사회적 약자층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에서 비롯된다. 증오집단 가운데 가장 큰 규모는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미국의 KKK이며, 독일의 네오 나치주의자, 슬라브 우월주의에 젖은 러시아 스킨헤드 등이 있다. 미의회는 1990년 4월 23일, 증오범죄 통계법(the Hate Crime Statistics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인종, 종교, 성적취향, 또는 민족성에 대한 편견에 의해 일어난 것이 확실한 범죄”에 대해 의무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다.
美 FBI에 따르면, 2012년 일어난 증오범죄 6,718건 가운데, 인종에 의한 범죄가 3,297건, 종교 1,166건, 성적취향 1,318건, 인종/국적 822건, 장애 102건 그리고 다중편견에 의한 범죄가 13건, 피해자는 7,164명이었다.1)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국내 증오범죄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지 않지만, “묻지마 범죄”나 인터넷의 “악성 댓글” 사건으로 인한 피해에서 보듯이 증오범죄가 심각한 양상을 보이도 있다. 이러한 증오문제는 종교계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기독교 안에서 대형교단과 소형교단, 기성교단과 신흥교단(혹은 개인) 간 증오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통하는 때
일찍이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딤후 3:1),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딤후 3:3)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증오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신문의 사회면 기사를 요약해 놓은 듯하다.
악의 존재는 “말세”에만 있는 독특한 특징은 아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이래 각 시대마다 죄악들이 만연하였다. 노아의 때와 같이, 오늘날도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죄악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세력의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온 악의 행로는 “말세”에 이르러 절정에 달할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좋아져서 마침내 온 세상이 회심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수많은 그릇된 종교인들의 달콤한 주장과는 반대로, 성경은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라고 선언한다. 인류의 점진적인 도덕적 타락은 인간이 결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입증한다.
교회공동체의 정체성 회복
2013년 6월, 대검찰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묻지마 범죄의 거의 대부분(87%)이 무직(63%) 또는 일용노동(24%) 등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경제적 빈곤층, 사회적 소외층이었으며, 이로 인한 현실불만 및 자포자기가 범죄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과 검찰에서는 “묻지마 범죄”를 분석하고 범죄자 관련 대책을 수립하며,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구형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 강덕지 전 과장은 “신호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신호등만 만드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묻지마 범죄 같은 사회 분노형 범죄를 저지르는 강력범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낙오하고 나약한 사람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인 안전망 구축이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데 사건이 터질 때만 정부·언론 등이 반짝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면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는 것이다.
로마제국 당시 미약하고 작은 공동체에 불과한 교회공동체가 300여년 만에 1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대제국 로마를 기독교왕국으로 변화시켰다. 그 비결을 옥스퍼드대학의 그리스어 교수였던 에릭 R. 돗스 교수는 첫째,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배타적 신앙이 크게 어필되었고, 둘째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구원관, 셋째 영생의 소망, 넷째는 교회공동체에 가입하면 의식주는 물론 여러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체감 등이었다고 말했다.2)
한국 기독교의 당면한 최대 위기는 이단‧이설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정체성을 상실한데 있다. 초기교회는 경제적 빈곤층과 사회적 소외층을 도와 사회적 막힌 담(엡 2:4)을 헐어냄으로 교회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야고보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5-17)고 지적했다.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1) http://www.fbi.gov 보도 참고
2) Eric R. Dodds, 불안시대 속에서의 이교도와 기독교도.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