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일곱 쟁투 - (5) 두 종류의 추수
추수에 관한 환상
공중을 나는 세 천사가 사라지자, 동녘 하늘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나타났다. 구름이 지구로 가까이 다가오자, 요한은 예수께서 금면류관을 쓰고, 오른 손에 예리한 낫을 들고 구름 위에 앉아 계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때 하늘 성전에서 한 천사가 나오더니 예수님을 향해 “낫을 들어 추수를 시작하십시오. 곡식이 무르익어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외쳤다. 예수께서 즉시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셨다.
또 다른 천사가 역시 예리한 낫을 들고 하늘 성전에서 나왔다. 뒤를 이어 성전 제단에서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나오더니 “낫을 들어 포도를 수확하십시오. 포도밭의 포도송이들이 무르익었습니다.”라고 외쳤다. 천사가 즉시 낫을 휘둘러 포도를 거두어 성 밖에 있는 큰 포도주 틀에 던지자 틀에서 피가 흘러나와 높이가 한 길이나 되는 홍수를 이루어 거의 천리까지 흘러갔다.(요한계시록 14장 14-20절)
추수의 의미
일찍이 예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3장 24-30절). 한 사람이 자기 밭에 밀을 뿌렸는데,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밭에 나는 강아지풀. 줄여서 ‘가랒’이라고도 한다)를 덧뿌렸다. 이삭이 팰 때에 가라지가 보이자 종들이 가라지를 뽑아버릴지 물었다. 주인은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놔 두어라. 추수할 때,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 묶어서 불에 태우고, 밀은 거두어 곳간에 쌓으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비유의 의미를 묻자, 예수께서는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자신이고, 밭은 세상, 좋은 씨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나쁜 씨를 심은 원수는 마귀, 추수 때는 세상의 마지막 날, 추수하는 일꾼들은 천사들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악인들은 불타는 아궁이에 던져지는 반면, 의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3장 37-43절).
예수께서는 추수 때 곧 세상 마지막 때에 온 세상 사람들이 둘로 나뉠 것을 여러 비유로 말씀하셨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재림 때에 모든 민족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그들을 각각 나누어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5장 30-46절). ‘그물의 비유’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 올린 후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물고기는 버리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의인들 가운데서 악인들을 가려내어 풀무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3장 47-50절).
동일한 장면이 요한에게는 곡식과 포도의 추수로 보여졌다. 곡식은 구원받을 의인들을, 포도는 멸망할 악인들을 표상한다. 천사들이 성전에서 나온 것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한 성전 봉사가 끝난 것을 의미하며, 포도주 틀에서 흘러나온 피는 하나님께 저항하고 의인들의 피를 흘린 악인들의 마지막 운명을 표상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의인들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께”(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있게 될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을 거절한 악인들은 “각 사람의 행한 대로”(마태복음 16장 27절) 형벌을 받고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포도주 틀에서 흘러나온 피가 높이가 한 길이나 되고 거의 천리(1,600 스다디온은 약 294킬로미터로 735리이다) 가까이 흘러가는 모습은 온 세상의 악인들이 예외없이 심판을 받고 처벌될 것에 대한 상징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
살아 있는 생물들은 외부의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공간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있는 지배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이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오늘의 ‘나’는 과거 내 의지의 선택의 결과이며, 내일의 ‘나’는 오늘 내 의지의 선택의 결과이다.
예언은 자기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곡식’으로 익어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포도’로 익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육체를 따라 사는 삶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삶으로 설명하였다.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육체의 일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나,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로마서 8장 6절)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를 갈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나는 죽어야 할 자라도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 너희는 돌이켜서 살도록 하여라.”(에스겔 18장 32절)고 말씀하신다.
엇갈린 운명
어느 날 저녁, 두 젊은이가 도박을 하러 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도박장으로 가는 도중에 교회가 있었다.교회 입구에는 그 날 설교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 “죄의 삯은 사망이다”였다. 불현듯 가책을 느낀 한 젊은이가 친구에게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도박장에 가기로 했으면 가야지 무슨 소리냐”며 제안을 거절했다. 옥신각신 하다 결국 한 젊은이는 교회로 가고, 다른 젊은이는 도박장으로 갔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뒤, 한 죄수가 감옥에서 신문을 보며 가슴을 치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 신문에는 미국 제 22대 대통령 클리브랜드(Cleveland)의 취임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날 교회로 향했던 젊은이는 30년 후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도박장을 향했던 젊은이는 죄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곡식들의 노래
갑자기 밧모섬의 하늘이 찬양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불처럼 빛나는 유리 바닷가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 믿음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충성함으로 출교되고, 생계를 위한 매매가 금지되고, 심지어 법적 보호조치가 해제되어 짐승처럼 쫓기며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승리하여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서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요한은 그 노래를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명명했다.
그 옛날 출애굽 때, 파라오의 군대의 추적을 따돌리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렀던 그 노래가 최후 일곱 번째 쟁투에서 리바이벌(revival)되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곡식들의 노래’이다. 그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시여, 주님의 일들이 크고 놀랍습니다. 나라들의 왕이시여, 주님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누가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주님만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만국이 와서 주님 앞에 예배할 것이니, 이는 주님의 의로우신 일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요한계시록 15장 3, 4절)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10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