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성경의 예언 -다니엘서 편 1

by 로뎀 posted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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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서막

 

왕이 죽을 병에 걸리다

엉덩이에 작은 종기(furuncle)가 생겼지만, 히스기야 왕은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대국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을 격퇴한 그가 아닌가! 까짓 종기쯤이야. 그리고 하필 종기가 생긴 부위가 엉덩이라서 어의(御醫)에게 보이기는 것이 거북스럽기도 했다. 종기는 모낭이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생긴다. 대개 시간이 지나면 피부가 터지면서 자연 치료가 되지만, 간혹 근처나 다른 부위에 감염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어느 날 밤, 고열과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왕은 급기야 어의를 불렀다. 왕을 진찰한 어의는 고개를 저었다. 당대 의학으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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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향하여 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선지자 이사야가 예고없이 왕을 찾아왔다. 왕은 침상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이사야를 바라보았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자기 할 말만 거침없이 쏟아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이다. ‘너는 집안 일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한다.’”

선지자는 마치 선고를 하듯 육중한 지팡이로 왕실 바닥을 한번 쿵 내려치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저런,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왕은 눈을 감았다. 절망이었다. 이사야의 말이 단 한번이라도 틀린 적이 있었던가. 지나간 날들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자신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를 신속히 저버렸던 배은망덕과 번영할 때 보였던 교만에 대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폐쇄했던 성전 문을 다시 열고 레위인들을 모아 성소봉사를 시작하게 한 일, 유월절을 회복시키던 그 감격스러운 장면, 전국의 우상들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내가 하늘과 얼마나 가까웠던가! 왕의 눈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벽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그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왕의 어깨가 조금씩 들먹이더니 마침내 통곡으로 변했다. 왕의 주변에 있던 신하들도 옷깃으로 눈물을 훔치며 함께 울었다. 그의 눈물은 하늘마저 적셨다.

 

네 눈물을 보았노라

왕실을 나온 이사야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궁정 구내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러 왔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전해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이사야는 즉시 발길을 돌려 왕실로 돌아갔다. 그는 무화과 반죽을 가져다 종기 난 곳에 붙이도록 지시하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였다.

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에 죽음을 선고해 놓고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이제 나을 거라니. 저 노인네가 정말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전한 것인가?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떠들어대는 것은 아닌가?

왕이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표적이 있소이까?”

이사야가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표적을 보여드리지요. 왕께서는 해 그림자가 해시계 위에서 십 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좋겠소이까, 아니면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좋겠소이까?”

해 그림자는 본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십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야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십 도 뒤로 물러나게 해 보시오.”

그러자 정말 해 그림자가 뒤로 열 칸을 물러났다. 이를 본 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이사야의 말대로 삼 일 만에 말끔히 회복되어 성전에 올라갔다.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바벨론에서 해시계를 관찰하던 천문학자들은 해 그림자가 십 도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무도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가 전해졌다. 마침 앗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을 찾던 므로닥발라단은 즉시 축하사절을 파송했다. 또한 천연계까지 지배한다는 그 여호와가 어떤 신인지 알아오게 하였다.

바벨론의 사신을 맞은 히스기야 왕은 뛸 듯이 기뻐했다. 바벨론이 유다와 손을 잡는다면 앗시리아를 대항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었다. 왕은 사신들에게 유다가 얼마나 부유하고 얼마가 강한 나라인지 확신시키는데 열중했다. 일급 비밀에 속하는 보물창고와 무기고까지 다 보여줬다. 바벨론 사신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은 우쭐해졌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깜박했다. 바벨론 사신들은 놀라운 보고를 갖고 돌아갔다.

 

미래를 말하다

갑자기 이사야의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의 눈앞에 바벨론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신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왕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보고하는 장면과 왕이 즉시 모사들을 소집해서 유다의 보물을 뺏기 위해 의논하는 것을 보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이사야는 황급히 일어나 육중한 지팡이를 들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여호와께서 왕께 말씀하신 것을 전하겠소이다. ‘장차 네 왕궁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바벨론에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네 조상들이 이 날까지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빼앗겨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또 네가 낳은 자녀들도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 왕궁의 내시가 될 것이다.’”

책망을 받은 왕은 크게 탄식했다. 그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다. 이로 인해 히스기야의 치세 동안에는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악의 씨앗이 이미 심어졌으므로 때가 이르면 자라나서 폐허와 비애를 거둘 것이었다. 만일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기를 자랑하는 대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쳤더라면 이후 역사가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박성하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