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열병
유다 다윗왕의 장남 암논은 이복 동생인 다말을 겁탈했다. 분노한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로 도망쳤다. 요압 장군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다윗이 만나주지 않자 반역을 계획하고 아히도벨을 끌어들였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로서 그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삼하 16:23)는 정평이 나 있었지만, 다윗이 자기 손녀 밧세바를 겁탈한 사건으로 그와 멀어졌다.
4년 후 압살롬은 아버지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다윗은 황급히 성을 버리고 피난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이 통곡하며 감람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유능한 모사이자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가 나타났다. 다윗은 후새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거짓 투항하여 모략을 꾸미도록 지시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한 후, 아히도벨은 자신에게 군사 1만2천 명을 주어 다윗을 추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후새는 다윗이 전쟁 경험이 많은 노련한 왕임을 상기시키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백성들을 소집하여 인해전술로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윗이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한 계략이었다. 압살롬과 그의 지휘관들은 후새의 의견을 채택했고, 그 결과 다윗 일행은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후새의 계략에 밀려나자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 성경은 그의 최후를 이렇게 전한다.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삼하 17:23)
[자존심에 상처받은 아히도벨]
전 세계 30초당 한 명씩 자살
지난 9월 8일 탤런트 안재환 씨의 자살에 이어 10월 2일 탤런트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 지난해 초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의 연이은 자살 이후 또다시 연속적으로 연예인 자살사건이 일어나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005년 2월에는 영화배우 이은주가 분당 자택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고, 1996년 1월에는 가수 김광석이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9월 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사망 및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총 사망자 24만4874명 가운데,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27.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뇌혈관 질환(12%), 심장질환(8.8%), 그리고 자살(5%) 순이다. 교통사고(3.1%)보다 순위가 높다. 1997년 사망원인 8위였던 자살이 지난해에는 4위로 상승한 것이다.
지난 해 전체 자살자수는 1만2174명으로, 하루 평균 33.3명이 자살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2000년 이후 전년대비 자살률은 매년 평균 13%씩 증가하고 있다.
자살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3천명, 시간상으로 약 30초당 한 명씩 자살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구촌이 자살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자살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 어떤 연구에 따르면 주위 사람 20여명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자살의 원인
모든 생물은 생존 본능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듣고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며 탄식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고 결심에서 실행에 옮겨가기 까지 복합적인 심리작용을 겪기 때문에, 원인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은 1897년에 발표한 “자살론”(Le suicide)에서 자살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자살이 엄연한 사회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통계 자료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정신병이나 신경쇠약증 등이 자살과 확정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전적 요소, 개인의 체질, 밤낮의 길이, 계절에 따른 온도의 영향 등 다양한 신체적, 물질적 조건들이 자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밝혔다.
뒤르켐에 의하면 4종류의 자살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이기적 자살이다. 개인의 사회통합도가 낮을 때 발생하는데, 사회통합에 실패한 사람들의 소외감이나 비관이 문제가 된다. 둘째는 이타적 자살이다. 이것은 개인의 사회통합도가 높을 때 발생하는데,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살폭탄 테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아노미적 자살이다.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의 급격한 변동에 적응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우리나라 IMF 때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는 숙명적 자살이다. 사회가 개인의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절망속의 자살이다.
뒤르켐의 자살론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지만,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자살을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얼굴 없는 살인 무기
지난 10월 3일, 뉴욕타임스(NYT)가 한국의 톱스타 최진실 씨의 자살을 이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를 한국 가정의 80%가 초고속통신망을 갖추고 있는 현실에서 나타난 왕성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의 영향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최씨는 자살 직전까지, 채무 관련 인터넷 악성 루머로 고통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악플(惡+reply, 악성 댓글)이 당하는 사람에겐 실제적 폭력이며 얼굴 없는 살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특히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대체로 악플러(습관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공간에서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과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 하는 것이다. 또 악플러의 심리 이면에는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는 가학성이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거나, 혹은 지배하고 싶은 욕구도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사회 지도층 인사나 연예인 등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악플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식이든 반응하는 순간 악플러의 먹이가 된다.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삭제를 요청하거나 정보통신부 윤리위원회 신고상담실(02-3415-0113)을 이용해도 된다. 명예 훼손과 관계되면 악플을 캡처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02-393-9112)에 수사를 의뢰하면 된다.
자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각종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가 됐다. 핀란드는 1980년대 말부터 자살자들에 대한 사후 정밀조사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 인구 10만명 당 30명이 넘던 자살률을 10년 만에 20명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 고령 등이 자살의 동기가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ㆍ경제적 안전망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아울러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과 교육을 강화하고, 상담센터 증설 및 구조ㆍ구호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이 참에 종교계와 교육계 그리고 언론계 등이 나서 타인에 대해 무심코 내뱉는 평가나 소문, 장난삼아 두드리는 키보드가 당하는 사람에게는 실제적인 폭력과 살인무기와 다름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했으면 좋겠다. 성경은 이렇게 권고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 3:10, 11)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시조, 200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