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다윗왕은 그의 만년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그의 현명한 통치로 국력이 신장되어 주변에 이스라엘을 넘볼 나라가 없었지만, 그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세계의 위대한 왕이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군대를 증강하여 주변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정정(政情)이 불안해졌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뿌린 씨는 이미 열매를 맺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도 “괘씸히” 여기셨다(대상 21:7). 선지자 갓(Gad)을 보내 잘못의 대가로 칠년 기근과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기는 것과 사흘 동안의 전염병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다윗은 전염병을 선택했고 결과 7만 명이 죽었다. 그래도 다윗은 기근을 선택하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국제 곡물 가격
지난 2월, 라면값 100원 인상이 발표됐다. 전국에 때아닌 사재기 열풍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라면값 100원 인상 문제를 언급했다. 라면값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밀가루 값이 두 배로 폭등했고, 옥수수는 1년 전과 비교할 때 50%나 인상됐다. 쌀과 커피도 10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세계 식량부족 사태가 30년 만에 다시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전세계적인 곡물 가격의 분석 기사를 통해 “전세계적인 식량 부족사태가 발생했던 1970년대 초 이후 처음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나라들에게까지 식량안보가 골칫거리로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앞으로 10년간 식료품 가격 상승률이 지난 10년간의 평균가격 대비 20∼50%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타격은 생산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식량 적자국들”이 입게 된다. FAO는 고유가로 인한 운송비 인상까지 겹쳐 내년에 “식량 적자국들”의 곡물 수입액이 2002년의 2배인 2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작년 “세계 식량의 날”(World Food Day, 10월 16일)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기아 인구는 8억5천4백만 명이며, 매년 4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식량은 다른 자원과 그 성격이 다르다. 영화는 돈이 없으면 안보면 그만이지만 식량은 공산품이나, 지하자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다윗이 전염병보다 두려워했던 “기근”이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것이다.
식량 위기의 원인과 대책들
국제농민조직인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는 식량 가격이 인상되는 이유로 곡물의 식물성 연료 생산으로의 전환, 국제 식량 비축량의 저하,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 생산 저하, 금융회사들의 식량 투기 행위 등을 들고 있다. 이밖에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의 발전에 따른 식량 수요 증가, 석유나 희귀금속 등의 가격상승에 따른 식량수출국들의 경쟁적인 가격 인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
최근 식물성 연료가 석유 고갈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은 2022년까지 식물성 연료 300억 갤런을 생산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서는 옥수수 생산량을 세 배 늘려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10년까지 교통수단 연료의 5.75%를 바이오 연료로 대체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선임 과학고문인 존 베딩튼 왕립 런던대 교수는 “기후 변화는 실제적인 문제로 적절히 다뤄지고 있지만 기후 변화보다 식량 위기가 훨씬 일찍 올 것”이라며 “바이오 연료의 사용이 식량 가격 급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식물성 연료 산업이 추진되면서, 2020년까지 곡물 등 식품가격은 지금보다 20~40%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식물성 연료 생산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는커녕, 귀중한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해양 오염을 심화시키며, 맹독 제초제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또한 식물성 연료용 작물 재배를 위한 삼림 벌목이 급증하고 있는데, 베딩튼 교수는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등 숲의 황폐화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18%에 해당한다”면서 “바이오 연료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IISD(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국제연구소) 산하 국제보조금감시기구(GSI) 소장 로널드 스틴블릭은 <IPS>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오연료는 한마디로 말해서 바보같은 아이디어”라고 단언했다.
이카로스(Icarus)의 날개
천체물리학자인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는 “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말했다. 이러한 도전은 인류가 하나님에게서 자신에게로 눈을 돌렸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이 자연환경을 인공환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무화과 나무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돌과 뼈를 깎아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 산업혁명은 인간이나 동물의 힘 대신에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에 눈뜨게 했다. 우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땅을 파고, 바다속을 뒤지고, 하늘을 휘저었다. 그 결과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 편리함이 여유나 평안을 주지는 못했다. 인간의 삶은 더 바빠지고 더 복잡해졌으며, 급격한 변화로 정서적 불안감이 증가했다. 스트레스가 현대 질병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또 자연환경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인공환경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문명이란 스스로 파괴시키는 인자(因子)를 안고 발전한다. 문명은 우리에게 환경오염을 비롯한 각종 공해를 선사했다. 지구온난화, 대기오염, 폐수가 흐르는 하천, 농약에 오염된 먹거리, 비료 과다 사용으로 황폐화된 지력 등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높이 날아오르다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가 녹는 바람에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마찬가지로 더 많은 식량과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이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로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이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지구 종말의 징조 중 하나로 “기근”(막 13:8)을 들었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식량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농약 오염이나 유전자 조작 등이 그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술꾼은 술 마신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지금 인류가 식량 문제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렇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은 “자연과 생명의 어울림”에 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는 이동시간은 단축시켜 주지만 강과 골짜기를 굽이도는 아름다움과 낭만을 뺏어간다. 식량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더 강력한 생산 증대 정책이 아니라 조급함과 과도한 욕망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원장
시조,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