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지만(君子和而不同), 소인은 서로 같은 듯 무리지어 다니지만 어울리지 못한다(小人同而不和).”(논어 자로편)
사람은 누구나 사귐이 있다. 그러나 군자의 사귐은 ‘화(和)’이나, 소인의 사귐은 ‘동(同)’에 불과하다. ‘화’는 각자가 지닌 특성을 다른 이와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동’은 각자가 갖고 있는 특성을 지닌 채 다른 이와 융합하지 않고 겉모양만 하나인 척 한다.
따라서 군자는 벗을 삼으나, 소인은 동료를 삼는다. 벗 사이에는 이해(利害)가 없다. 그래서 벗은 배반할 줄 모른다. 벗이 서로 나누는 마음가짐이 화(和)이다. 그래서 화목, 화기, 화합한다.
대신 소인은 이해(利害)가 있다. 그래서 소인은 이로우면 한 패거리를 이루어 함께 어울리고(同), 해로우면 헤어진다. 어제의 동료도 오늘 사소한 차이로 원수가 된다.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 하지 않지만, 소인은 부화뇌동만 할 뿐 화합하지는 못한다.
‘화이부동’은 도리에 맞으면 서로 화합하고, 도리에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 하지 않는다. 반면에 ‘동이불화’는 각자의 이익이나 기호가 맞으면 어울리지만, 이해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부화뇌동 한다. 친구나 교인 간에도 ‘화이부동’하는 모임은 오래 지속 되지만, ‘동이불화’하는 모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SNS 같은 공간은 서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발표할 수 있다. ‘화이부동’하는 그리스도인은 큰 틀 안에서 화합한다. 자기와 의견이 다를 경우, 저 사람의 의견은 나와 다르구나 생각은 하지만 원수를 삼지 않는다. 그러나 ‘동이불화’하는 그리스도인은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어울리지만 자기와 약간의 취향이 다르거나 의견이 다르면 논쟁을 벌이고 쉽게 원수를 맺는다. 소인배들이 하는 짓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벧전 4:15)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