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서 배울 소중한 교훈들
지난 3월 2일, 대구시립화장장인 명복공원에서는 77세된 한 할머니의 화장(火葬)이 엄수됐다. 그러나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아들만 겨우 곁을 지켰다. 고인이 ‘코로나19’ 21번째 사망자였기 때문이다.
고인은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어 선별진료소를 찾았지만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진단검사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2월 29일 상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다음 날인 3월 1일 숨졌다. 그리고 그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장례관리 지침’에 따라 즉각 비닐백에 밀봉된다. 염도 하지 않고 수의도 입히지 않는다.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에 따라 밀봉된 상태로 입관한 후 곧장 화장장으로 이동한다. 혹시 모를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가족도 최소 인원만 참관할 수 있다.
이 할머니의 남편(79)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됐다. 코로나가 55년을 함께한 부부의 마지막 작별 인사마저 막아버려 남편은 집에서 혼자 울어야 했다. 고인은 화장 뒤 바로 시립납골당에 모셔졌다. 남편 역시 확진판정을 받고 대구의료원에서 코로나19와 사투 중이라고 한다.
비극의 날에 대한 예언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렘 25:32-33)
기원전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공격하여 여호야김의 항복을 받고 다니엘을 비롯한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 간 직후에, 예레미야는 애굽에 대한 헛된 소망을 버릴 것과 하나님께서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시는 바벨론에 굴복할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이 권고를 거절할 경우 유다가 받을 파멸을 엄숙하게 예언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유다는 지속적으로 바벨론을 배신했고, 결국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을 완전히 멸망시켰으며, 예레미야의 경고는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예언의 보다 원형적이고 종말적인 성취는 세상 역사의 끝에 이루어진다. 재림의 날에 온 땅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시신으로 덮일 것이나 애곡하는 사람도, 염(殮)하는 사람도, 매장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진노의 잔에서 떨어지는 방울들
예수께서 재림의 징조 가운데 하나로 “전염병”(눅 21:11)을 언급하신 것은, 그것이 단지 말세에 기후변화나 인간의 실수 등으로 나타날 징조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흑암의 세력이 생명과 영양의 근원들 중의 하나인 공기를 독기로 더럽히는 그 치명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을 억제하지 않으신다. 식물의 생명력이 영향을 입을 뿐 아니라 인간이 질병에 시달린다. …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서 지상에 뿌려지는 방울들의 결과이며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희미한 묘사이다.”(가려뽑은 기별, 3권, 391)
지난 3월 9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위협이 매우 현실화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 CNN은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발병을 ‘팬데믹’이라고 부르겠다”고 미리 선포했다. CNN 의학 담당 수석 기자인 산자이 굽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환자가 10만 명이 넘고 3천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 여러 국가에서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2002년 발생한 ‘SARS(사스)’는 치사율이 9.6%였고, 2012년에 발생한 ‘MERS(메르스)’는 34%나 된다. 1997년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는 치사율이 무려 58%에 달한다. 이에 비해 코로나19의 치사율은 대략 2% 내외이다. 매년 수억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계절성 독감의 치사율은 0.05%이다. 문제는 코로나19의 치사율은 사스나 메르스보다 낮지만, 전염력 및 전파속도가 훨씬 높다는데 있다. 또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증상이 없을 때도 전파력이 있어 방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팬데믹이 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만일 팬데믹이 되면 해외 여행, 교역 제한 등 경제적 영향은 물론 학교나 직장 등 개인의 사회 활동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신앙과 양심이 억압을 받을 때
지난 3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종교집회 자제촉구 결의안’이 회의에 참석한 157명의 국회의원 중 찬성 146, 반대 2, 기권 9로 가결되었다. 이에 기독교계에서는 이미 자발적으로 각종 집회를 자제하고 온라인으로 대체하고 있는 교회에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같은 날, 경기도 지사는 “지금은 국민 생명·공동체 안전이 위협받는 비상상황이므로 적극적이고 강력한 예방조치가 불가피하다”며 “도내 종교집회 금지명령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3월 9일 경기도민 1천1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한 결과 종교집회 금지명령을 내리는 것에 대해 도민 88%가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후일 전세계적 재난이 닥쳐오고, 이로 인해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통제불능의 사태가 이를 때, 민심의 흐름과 이에 따라 정치 세력들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그리고 공공복리와 우리의 신앙이 충돌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1880년 대 말, 미국 기독교계는 ‘일요일 법령’을 추진했다. 대부분의 주에서 단순한 공휴일 개념으로 추진하였으나, 남부에서는 종교적 동기가 공공연히 강조되었다. 100여 명의 재림교인들이 일요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이나 금고형을 받았고, 또 쇠사슬에 묶여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이때 엘렌 G. 화잇은 예민한 지각력을 가지고 “임박한 쟁투”(교회증언, 5권, 711-718)라는 기사를 발표하여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알렸으며, 1889년 대총회 회기에 진지한 연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화잇은 “지상 통치자들의 법률이 우주의 최고의 통치자의 율법과 상치될 때,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께 성실할 것”(교회증언, 5권, 713)을 권고했다. 그러나 “반항심을 나타내거나 악의로 오해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나타내서는 안 된다.”(2MR, 193, 194)며, “우리 자매들은 일요일을 세탁물을 너는 날로 택할 필요가 없다.”(3SM, 399)고 권고했다.
우리는 이때의 경험에서 소중한 원칙을 배웠다. 그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것이다.
시험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자초하지 않도록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지혜와 판단을 활용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368).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의 요구와 정부의 요구가 충돌한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결과로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당당히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도록 요청을 받을 것 같으면, 우리는 어린아이가 그의 부모를 신뢰하듯이 그분을 신뢰함으로 감옥에 갈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 날 사건들, 149)
이러한 믿음은 위기의 때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계발시켜야 할 때이다.”(마지막 날 사건들, 149)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 이 원고는 교회지남 2020년 2월에 작성되었으며,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