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한 2년만 잘 견디면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델타’보다 전파력이 훨씬 강한 ‘오미크론’이 등장하면서 인류의 주적 인플루엔자처럼 영원히 퇴치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2003년 사스 때는 범유행으로 번지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러나 2015년 메르스,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인간에게 완전히 적응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범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WHO를 비롯하여 전 세계 의학계에서는 어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치료할 수 있는 만능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집단면역에 확신을 잃다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될 때, 전문가들은 전 인구의 60%가 항체를 가지면, 집단면역이 이루어져 전염병의 전파가 느려지거나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작년 10월 말, 고령층 90%, 성인 80%가 예방 접종을 완료하자,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으로 가기 위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판단하고, 11월부터 방역조치 완화 1단계를 시작했다. 이 조치는 3단계로 진행되는데, 1단계는 생업시설 운영제한을 완화하고, 2단계는 대규모 행사를 허용하며, 3단계는 사적 모임 제한을 해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역조치를 완화하자 신규 확진자가 사상 최대로 폭증하고,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또한 증가했다. 한국보다 앞서 일상회복에 돌입한 구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백신 접종 등을 증명하는 코로나 패스 사용범위를 확대하는 등 방역 조치의 고삐를 재차 조이고 있다. 미 CNN은 “우리는 유럽을 통해 백신이 가진 효과는 분명하지만, 백신만으로 코로나19를 종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배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집단 면역에 대한 확신도 줄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집단면역이 형성되려면 처음에는 전체 인구의 60~70%가 항체를 가져야 한다고 했으나 몇 달 후 70~75%가 되어야 한다고 수정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 80~85%로 높였고, 최근에는 90%까지도 기준이 올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 모두 추측에 불과하며, 그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특히 데이비드 모렌스 전염병연구소 역학부문 수석고문은 “집단면역의 정확한 형성기준은 실제 감염병이 지나간 후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방역패스제 논란
지난 해 11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자유를 위해 함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자유’를 외쳤다. 방역 조치 재도입과 백신 접종 증명서 제도화에 대한 항의 시위였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그린 패스(Green Pass)’, 유럽연합(EU)은 ‘디지털 그린 증명서’, 덴마크는 ‘코로나파스(Coronapas)’ 등을 시행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위드(with) 코로나’와 함께 13만개 다중이용시설에 ‘방역패스’(접종증명ㆍ음성확인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방역패스를 적용받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방역당국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백신 접종을 중단해야 할 정도의 부작용이 있거나,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 의사의 판단을 거쳐 예외 적용을 하겠다고 하지만, 기저질환이 있거나 부작용에 대한 염려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을 전망이다.
WHO는 국내외 여행 목적의 백신여권 도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또한 연방정부 차원의 백신접종 증명서 발급을 의무화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방역패스제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코로나19 초기에 히브리대학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지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이전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세계는 ‘전체주의적인 감시체제와 시민의 권한 강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2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뚜렷하게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최소의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고 여겨져 왔다.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장치가 ‘정부’다. 정부란 생겨난 순간부터 커지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개인은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큰 정부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대원칙 아래 경제를 계획하고 통제한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이 위축되고 개인과 기업의 조세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작은 정부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삶을 책임지도록 보호하고 안내하는 정부이다. 그렇게 해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간섭과 개입은 가능한 최소화되어야 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론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경제대공황 등을 겪으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큰 정부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복지정책들을 시행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말 경기침체와 재정악화, 그리고 복지병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작은 정부론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순식간에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세계 각 정부는 공공의 유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 뿐 아니라 대면 예배 등 신앙의 자유까지 간섭하고,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때로 자유의사에 반하는 강제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큰 정부’가 등장할 것이며,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고 예언하고 있다. 이 표는 어떤 불가피성 때문에 정부가 개인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강제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조치들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방역패스제’의 불가피성을 의심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는 각 정부가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차후 전염병이나 기후변화 등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균형을 깨뜨리는 점)를 통과하고, 세계 경제와 질서가 무너져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되면, 너무나 쉽게 자유 제한과 ‘매매 금지’ 등의 조치가 시행될 것이다.
새해가 되었지만,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게 될까? 그 날이 오긴 할까?
/ 박성하, 2022.1월호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