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성경절의 의미를 알려면 전후문맥을 살펴 어떤 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는지 살펴야 합니다.
2. 이 성경절은 21절의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와 직접 관련됩니다.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이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교에 있을 때 행하던 각종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갈 4:10, 개정)켜야 하고, 특히 할례를 받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갈라디아교회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주장이었습니다.
3. 바울은 자신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유대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사라-하갈, 이삭-이스마엘, 새 언약-옛 언약, 지상의 예루살렘-하늘의 예루살렘 등의 비유(24절)를 들어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이것들은 비유이며, 실제는 믿음과 율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따라서 비유를 실제로 해석해서 “어머니 하나님”도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본문의 의도를 벗어난 것입니다.
4.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과 10절에 “새 예루살렘”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예루살렘은 “신부 곧 어린 양(예수)의 아내”(계 21:9)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계 19:7)면 새 예루살렘과 혼인합니다. 이것은 첫째 아담이 잃어버린 지구의 통치권(창 1:28)을 둘째 아담(롬 5:14, 고전 15:45, 47 참고)이신 예수께서 회복하시는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지구의 통치권을 예수님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나라의 수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7:14, 19:16)로서 세상 나라는 통치하실 것입니다.
5. 그러나 갈라디아 4장 26절은 당시 지상의 예루살렘이 유대교의 중심이며 상징이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을 기독교의 중심이며 상징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여기고, “율법은 어머니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할례의 법에 복종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반박하여,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더라도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갈 3:27-29).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우리를 낳은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이 성경절의 의미를 알려면 전후문맥을 살펴 어떤 주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는지 살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