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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7년 12월호 <가정과 건강>에 실린 글입니다.

 

고부간 아름다운 동거를 위하여

 

“왜 일어나? 좀 쉬라니까.”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누워 있어요.”

아내가 약간 짜증을 내면서 부스스 일어난다. 당시 아내는 둘째 아이를 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도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설거지통으로 옮기는데 힘들어 하길래 좀 쉬었다 하라고 했다. 조금 망설이더니 “그럴까?” 하면서 나를 따라 방에 들어와 누웠다. 그런데 5분도 안돼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주방에 나가보니 정말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 그냥 두시면 좀 있다 저 사람이 할텐데 왜 사람 쉬지도 못하게 해요!”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서 나를 쳐다보셨다. 내 뒤로 아내가 나타나자 그제야 상황을 깨달으신 어머니는 씻던 그릇을 소리나게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언제 설거지 안했다고 뭐라고 했냐? 난 에미가 힘들어해서 도와주려고 한 것 뿐이다. 그것도 잘못이냐?”

아내가 나를 밀치며 말했다.

“당신, 정말 도움이 안 되네. 들어가세요.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할게요.”

어머니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한번 흘겨보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때 나는 바보짓을 하긴 했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의 배려마저도 시집살이가 될 수 있다!!”

 

설탕도 쓰다

고부(姑婦) 간의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스페인 속담에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들었어도 쓰디 쓰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배시시 웃음이 나는 속담이지만, 현실은 웃을 일이 못된다. 굳이 전문자료를 찾지 않아도 인터넷을 뒤져보면 고부간의 갈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혼 사유도 가족 간 불화(8.9%)가 부부 간 성격차이(49.7%), 경제문제(14.6%)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한다(2006년 이혼 통계-통계청). 배우자 부정(7.6%)이나 정신․육체적 학대(4.5%)보다 높다. 이혼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고부간 문제로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

 

고부갈등의 원인

우리나라에서 고부갈등이 발생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세력구조면에서 가정 내 주도권 문제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주부권과 관련하여 시어머니는 자기가 해오던 살림살이 권한을 유지하려는 반면, 현대 며느리들은 자기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 

둘째는 역할구조면에서 고부간 상호역할기대와 수행의 불일치로 말미암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전에 며느리의 일차 의무는 시부모 봉양과 자손 출산이었다. 그러나 현대 며느리들은 아내 역할이나 자녀 교육에 치중하는 대신 시부모 봉양은 비교적 경시하는 경향이다. 따라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해 기대하는 것과, 이런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며느리 사이의 부조화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셋째는 애정구조면에서 전통 부계가족사회에서 형성된 어머니와 아들사이의 특별한 모자관계 때문에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전통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시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크고, 언제까지나 아들이 자기를 가장 신뢰하고 의존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 후 자신에게 관심이 줄어들게 되면 결국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게 되고, 며느리가 침략자, 경쟁자로 여겨지게 되어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고부갈등 해결하기

성경에는 고부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첫 결혼을 친히 주례하시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남편이 그의 애정과 의무의 첫째 자리를 아내에게 내어주어야 할 것을 가르치며, 부모들도 자녀가 성장하면 그들의 마음에서 자녀에 대한 애착의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이 부모자식간의 사랑을 갈라놓거나,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와 존경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상황에 따라 사랑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고부간 갈등의 해결 방법은 가족이나 사회적 도움도 필요하지만, 문제 해결의 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당사자들이 쥐고 있다.

첫째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내가 며느리라면 내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느껴질까, 내가 시어머니라면 내 말이나 태도가 어떻게 느껴질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피차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위치와 권한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둘째는 기존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나이 차이만큼 세대차이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몇 세대가 같은 전통을 공유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5년 차이만 나도 다르다. 따라서 시어머니는 자신이 수행했던 며느리의 역할을 기대하지 말고, 가사일이나 손자녀 양육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시어머니와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갖고 있는 풍부한 삶의 경험과 지혜 등을 존중하여 집안일에 가능한 자문을 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단 순종하는 자세를 보여 불필요한 적대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의사소통능력과 갈등해결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갈등은 의사소통의 문제로 발생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망하거나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간을 선택하여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전달해야 한다. 상황만 설명하면 마치 따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일로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내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는 “나-전달법(I-massage)”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 상대방이 말할 때는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들은 내용을 요약하여 잘 이해했는지 확인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경험

우리는 첫 아이를 낳고, 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위해 오셨다가 그대로 합치게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어려움도 있었다. 일어나고 자는 시간, 육아방식, 가사 분담 등에서 갈등을 겪었다. 한때 부모님이 분가를 계획하시기도 했다. 그러나 갈등과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아내는 피하는 대신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표시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신식 며느리의 태도에 당황하셨지만 그 덕분에 며느리 생각을 정확하게 알게 되셨다. 고마운 것은 부모님의 변화이다. 우리 부부, 손자손녀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일체의 잔소리나 간섭을 멈추셨다. 그 대신 늘 출장이 많고 바쁜 우리 부부 대신 집안의 일을 도맡아 해주신다. 아내는 가끔 “이제 저 사람 없이는 살아도 두 분이 없이는 못살아요.”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최고의 학위를 갖고도 해결하기 힘든 고부갈등을 어머니와 아내를 해결했다. 요즘도 일년에 한두번 살짝 갈등이 있긴 하지만, 그 동안 경험을 통해 20년 가까이 누려온 평화를 깨뜨리지 않을 지혜가 있음을 나는 안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