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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22:23

두레박 줄을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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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필자가 전에 각종 잡지에 쓴 것이나 설교문을 옮긴 것입니다.

 

두레박 줄을 놓아라

초등학교 5학년 때, 낙향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읍내에서 큰 산을 세 개나 넘어 첩첩산중 시골로 이사하게 되었다. 우리는 새집을 지어 입주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동네 할머니 집 바깥채에 세를 얻어 지내게 되었다. 부모님이 짐을 푸는 동안 흥미진진한 시골집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나와 동생들은 주인집 마루 옆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낡은 지게를 발견했다. 내가 그 지게를 지고 작대기를 잡고 어른들 흉내를 내고 있으려니까 동생들이 “형, 나도 한번 해보자”며 졸라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긴 담뱃대를 물고 우리의 하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주인 할머니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이고, 저것들. 지게질이 뭔지나 아나. 쯧쯧쯧. 그게 죽을 때까지 남자들 등골 빼는 거여. 뭘 그걸 서로 못져봐서 야단들이야.”

■ 인생은 지게질
나는 얼마되지 않아 할머니의 말뜻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일에 예외가 없었다. 여자애들은 감자를 까거나 설거지를 도와야 했고, 남자애들은 가축들 먹이를 주거나 산에서 나무를 해와야 했다. 어려서부터 지게질에 익숙한 시골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영 지게질이 서툴렀다. 산에서 나무를 지고 내려오려면 다리가 후들거렸고 걸핏하면 지게 발목이 덩굴에 걸려 산 아래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평지에 내려왔다고 지게질이 쉬운 것은 아니다. 멜빵이 나무 무게에 눌려 어깨를 한없이 뒤로 잡아채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앞으로 주기 위해서는 자라목을 하고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 걸어야 한다. 지게꾼들이 쉬는 곳을 “바탕”이라고 하는데, 다음 바탕에 닿을 무렵이면 숨이 턱에 차고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곤 한다.
시골을 떠나면서 더 이상 지게를 지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의 지게까지 벗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누구나 평생 동안 등골 빠지게 지고 가야할 지게들이 있다. 학생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라는 지게를 지고 등골이 휘도록 학교에 다녀야 한다. 사회에 나가서는 경쟁에서 이기고 먹고 살기 위해 더 무거운 지게를 져야 한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 높은 직책을 맡게 되면 더 무거운 책임의 지게를 져야 한다. 그때는 쉴 “바탕”의 간격도 더 멀어져 좀처럼 다음에 쉴 바탕이 나타나지 않아 등골이 빠지도록 일만 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다 쉴 바탕을 만나 삶의 지게를 내려놓을 때쯤에는 인생도 함께 내려놓게 된다.

■ 두레박을 물속에 빠뜨리면 가벼워진다
한번은 부친을 따라 밭에 갔다. 부친이 일을 하시는 동안 개구리도 잡고 풍뎅이 목을 비틀어 뺑뺑이를 돌리며 놀곤 했다. 그것도 심심해지자 들판 이곳저곳을 거닐던 나는 깊이가 두어길 되는 우물을 발견했다. 마침 그 옆에는 커다란 두레박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두레박을 내려 물이 가득차자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두레박이 물속에서 올라올 때까지는 쉬웠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더 이상 두레박이 꼼짝을 않는 것이었다. 줄을 놓고 도망을 치자니 두레박이 우물에 빠져 안 될 것 같고, 끌어올리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겁이 난 나는 울면서 아버지를 불러댔다. 황급히 달려와 두레박 줄을 넘겨받은 부친은 껄껄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두레박을 끌어올릴 수 없거든 도로 물에 빠뜨리거라. 그러면 가벼워진단다.”
우리는 자주 삶의 두레박 줄을 끌어올릴 수도, 놓아버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다. 붙잡고 있는 것을 놓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때로 놓아버리고 포기함으로써 문제가 가벼워지고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 여호와께 맡기라
잠언 16장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나이를 먹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책임이 무거워지고,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떤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주에 있지만, 어떤 문제들은 우리 손이 미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때 우리는 포기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을 안고 불안해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때 신앙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놓아버리고 포기하면 큰 일이 나고 죽을 것 같지만 막상 놓고 나면 별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무거운 책임과 고민을 하나님께 맡겨버리면 이제 그 문제는 하나님의 책임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께 모든 행사를 맡기는 사람은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메리 쿠슈만 부인은 3년 전 남편을 잃고 다섯 자녀와 함께 힘겹게 살고 있었다. 파출부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수입마저 줄어들어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도둑질을 하다 잡혀 끌려왔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간 후 아들은 울면서 사실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가난 때문에 누명을 쓰고 모독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순간 나의 정신력은 꺾였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모든 문을 잠그고 빈틈을 신문과 헝겊으로 막았습니다. 가스를 틀어 놓은 후 다섯 살짜리 딸을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딸은 ‘엄마, 왜 또 자?’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잠간 낮잠 좀 자자’고 했습니다. 눈을 감고 히터에서 나는 가스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연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엌의 라디오를 끄지 않았던 것입니다. 음악이 계속되다가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줄을 모를까
찬송을 들으며 나는 큰 잘못을 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했으며,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펄쩍 뛰어가서 가스를 끄고 문을 모두 열었습니다. 나는 온 종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귀엽고 건강한 다섯 아이를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감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후 약속을 지켰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삶의 무게에 짓눌린 당신을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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