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의 영성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1~42)
법정 스님이 난초 두 분(盆)을 선물받았습니다. 혼자 사는 분이라서 방 안에 생물이라고는 자신하고 난(蘭) 두 개뿐이었다고 합니다. 난을 잘 키우기 위해 책도 사 보고, 해외에서까지 비료를 구해 길렀습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고, 겨울에는 난에 적합한 온도에 맞추느라 추위에 벌벌 떨며 지냈습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볼일이 있어 산을 거의 내려왔는데 갑자기 햇빛이 나자, 뜰에 내놓은 난이 생각났습니다. 허둥지둥 되돌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잎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얼른 샘물을 길어다 축여 주고 해서 겨우 고개는 들었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 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 법정 스님은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집착(執着)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며칠 후 놀러 온 친구에게 난을 선뜻 주고 나서야 비로소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자기를 돕지 않는 마리아 때문에 불평했을 때, 예수님은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정신이 없구나.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41~42, 우리말성경).
마르다는 ‘많은 일’을 하느라 ‘꼭 필요한 한 가지’ 곧 예수님을 소홀히 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정작 예수님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날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일, 분주함, 복잡함을 포기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단순성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정작 중요한 일은 잊고 덜 중요한 것에 우리의 관심을 빼앗기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라는 경구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술적 아름다움이 가장 절제된 음과 선과 율동에서 나오는 것처럼 종교적 성스러움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솔직하고 정직하고 가식이 없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단순해지도록 계획하셨다. 이것이 하늘의 원칙이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이다.”(1증언, 113)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