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영성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헤르만 헤세의 <동방여행(Journey to the East)>(1932)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내용은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 사람들이 동방으로 신비로운 순례길에 나선다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일행 가운데는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레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순례자들이 지치고 힘들어할 때 노래로 활기를 북돋고, 마음이 고통스러운 사람을 다정한 미소로 위로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도맡았습니다. 레오가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레오가 사라지자 일행은 혼돈에 빠지고 결국 여행은 중단됩니다. 사람들은 레오가 없어진 뒤에야 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순례단의 일행으로 참가했던 주인공은 몇 년을 찾아 헤맨 끝에 레오를 만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종인 줄 알았던 레오가 사실은 순례자들을 파송한 교단의 최고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로버트 그린리프는 이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미국 최대 전화회사인 AT&T에서 경영 연구와 교육을 담당했던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미래에는 지금까지 통용되어 오던 조직원들을 통제하고 압박해서 실적을 올리던 리더십과는 전혀 다른 리더십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그린리프는 오늘 기억절에서 새로운 섬김의 리더십 모델을 발견하게 됩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마 20:28)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찰스 콜슨은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테레사 수녀가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미국 사람은 대부분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지만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쳤을 때는 오직 침묵만 감돌았다고 합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연설 마지막에 던진 이 한마디에 너무나 숨 막히는 감동과 전율에 가슴이 짓눌린 나머지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박성하 / 로뎀아카데미 원장